▶ 뒷줄 왼쪽부터 : 윤종태, 서순례, 양순희, 국승목, 윤복례, 임태련

▶ 앞줄 왼쪽부터 :  정숙진, 김태희, 한길자, 김종필,  김순봉, 송병희

 

“청노세! 청노세! 산 좋고, 물 좋고, 어절~씨구 조~오타~”

지난 28일 화요일 저녁 8시 해가 뉘엿이 지고 제법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텅텅 빈 사무실들…
그러나  가산종합사회복지관 5층 강당 문틈으로 빛이 세어 나왔다. 문 앞으로 가만히 다가가니 인기척이 들린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용기를 내어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갑작스레 와르르 쏟아져 나온 빛과 함께 10여명의 사람들이 장구를 메고 사뿐사뿐 걸으며 다가왔다 빙그르 되돌아 간다.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에게 눈길이 쏠린 것도 잠시, 선두에 선 강사의 지시대로 장구를 치며 장구 장단에 발 장단을 맞추고 연습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청노세 풍물굿패원들에게 풍물을 전수하고 있는 강사 윤종태(53, 염창동)씨는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라 주로 저녁에 모여서 이렇게 연습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동아리탐방은 주인공으로 올해로 창단 11년을 맞은 풍물굿패《청노세》를 만났다. 지난 2002년 5월 1일 가산종합복지관에서 ‘청년에서 노년까지 아우르는 세상’이란 의미를 담아 풍물굿패 《청노세》가 창단됐다. 창단 당시 15명이었던 회원은 10여년이 지난 오늘 23기 청노세 신입회원들이 기초강습을 받고 있으며, 출석회원은 약 50여명, 그동안 청노세를 거쳐 간 후원회원도 180여명이나 된다.


청노세는 패명처럼 어린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회원들의 연령도 다양하다. '무형문화제 제11-마'호 호남좌도 임실 필봉 풍물가락을 기본으로 풍물, 사물놀이, 민요, 난타 등을 전수하고 있다. 주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독산역 인근에도 연습실을 마련해 강습이 없는 날에도 매일 연습을 할 수 있다.


가산동에서 마이크제이엘이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있는 국승목(57, 정릉)씨에게 청노세는 사업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힐링장소이다. 국씨는 “매주 모임이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며 “청노세를 만나기 이전에는 회사 끝나고 집에 가서 TV를 본다던지, 당구장이나 간다던지 했던 나의 여가문화가 이제는 우리 것을 찾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씨는 “풍물을 하면서 나 혼자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공연 등을 통해 우리 문화를 알리고 전파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청노세 6기 김순봉(60, 독산동)씨는 올해로 만9년째 청노세에서 풍물을 치고 있다. 풍물을 배우기 위해 청노세에 들어왔다는 김씨는 이제는 신입회원들에게 풍물기초강습을 하는 강사가 되었다. 청노세 고참으로서 부담이 많다는 김씨는 “좋은 면을 보여줘야 다른 사람이 나를 따라온다”며 “청노세 거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씨는 “우리 청노세는 돈을 받고 풍물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며 “강사님들도 자비로 회비를 내고 모두 자원봉사로 풍물을 가르치신다”고 귓뜸했다.


가리봉전기에 근무하는 송병희(60, 화곡동)씨는 “청노세에서는 내 나이를 잊게 된다”고 말했다. 무슨 뜻 인고 하니, 풍물공연을 할 때면 민복을 입고 고깔을 쓰는데 고깔을 쓰면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구분을 못한다는 것. 송씨는 “길놀이를 할 때면 할머니가 같이 놀자고 나와 춤  추시기도 하고, 어떨 때는 처녀 아가씨가 한번 사귀자고 하는 일도 있다”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에게 풍물을 전수하고 있는 강사 윤씨는 “우리 민족은 흥의 민족”이라며 “우리는 슬퍼도 노래하고, 기뻐도 노래를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심적인 여유들이 없기 때문에 그런 흥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른다. 이 사람들이 삶에 흥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습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또 윤씨는 “우리사회가 악해지는 것은 놀이문화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소통이라는 것은 놀이로 풀어야한다”고 말한다. 이어 윤씨는 “우리가락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형식으로 돼있다”며 “우리 삶 또한 그렇게 해야 풀릴 수 있는데, 우리는 내고, 달고, 맺고까지 밖에 못해 풀지를 못 한다”고 말하며 “푸는 방법만 알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걸 우리 가락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의 휴식시간을 이용한 인터뷰를 마치고 등 뒤로 청노세의 장굿가락이 이어졌다. 그 가락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 장단을 맞춘다.

5월28일 저녁 8시 가산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풍물굿패 '청노세' 패원들이 연습중이다.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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