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다니는 우리 마을답사 49 - 학교답사 4편

 -가산중학교-

 

나는 1979~1982년까지 코카콜라 뒤편에 있던 강서여자중학교(현재 가산중학교)를 다녔다. 금천 홈플러스 앞 육교를 넘어 독산4동 1025-8번지, 집까지 걸어 다녔다.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우리집은 등하교길에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첫 번째 집이었다. 작지만 고만고만한 집들이 지금은 모두 연립주택이 되어버린 것처럼 학교 주변도 많이 변했다.


끈적임을 더하는 날씨라 살살 산책삼아 길을 나섰다. 동네 학교를 답사하면서 먼저 떠올랐던 것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뛰어놀던 운동장, 소독약 냄새나는 화장실, 언제나 가기 어려웠던 교무실.


한결 같이 성실하고 반듯하고 우수한 아이들만 원하는 학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재미없는 곳이었다. 다만 담임선생님에게 신경안정제를 먹게 할 만큼 문제 학급에 다녔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은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웠다. 학생주임이 자주 종례 시간에 나타나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도덕 선생님은 아름다운 음악과 명상으로 달래기도 했다.


어른들의 걱정에 비해 무사태평했던 우리반 아이들은 왕따는 커녕 똘똘 뭉쳐서 남다른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나중에 퇴학당한 친구들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는 으례히 떡볶이 집으로 가 그간에 일들을 재잘거리기에 바빴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느 공장에 다닌다는 소식과 남자친구와 함께 도망갔다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그 친구가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말은 거칠었지만 다정하고 유쾌했던 그가 ‘빨리 어른이 되었구나.’하는 정도. 


홈플러스를 돌아가며 옛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낯선 풍경에 걸음을 멈추었다. 하이마트 뒤쪽 택시회사와 그 옆 분식집은 여전한데 육가공과 유통을 하는 소매점이 즐비하다. 그러고 보니 비릿한 고기 냄새가 난다. 우시장이 가깝긴 했지만 교문 앞까지 상가가 커졌나보다.


우리 동네 대표적인 생산과 노동의 현장인 우시장을 탓하기는 어렵다. 또 고기 소비가 날로 늘어가는 세태로 볼 때 당연한 확장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 앞 환경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 그래도 교문 안으로 한발짝 들어서는 순간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오른쪽으로 아름드리 자란 느티나무가 단단하게 서있는 모습이 반가웠다. 그리고 수업중인지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하는 아이들, 농구하는 아이들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담장을 따라 사철나무, 향나무, 졸업사진의 배경이 되었던 단풍나무들이 30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산중학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양한 공장과 시장통의 어수선함 속에 유일하게 녹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교실로 들어가는 현관에는 오래된 마로니에(칠엽수)와 장미 덩쿨이 하얀 아치 위로 드리워져 있다. 3개의 아치를 지나다니며 아이들은 잠시 꽃그늘에서 쉬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거목으로 자란 벚나무 꽃잎이 날릴 때 자신들의 소중했던 순간들의 배경으로 그 모습을 기억하게 될까.


흐드러지게 핀 사철나무 꽃과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보면서 장정일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20대엔 이 시가 큰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엉뚱하게도 내가 쉴 사철나무를 찾아 나설 땐 그늘을 드리울만한 사철나무는 없었다. 실제로 크게 자라지 않는 떨기나무인데다가 느리게 자라는 나무라 그 그늘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 나는 가산중학교에 와서 드디어 그럴만한 사철나무 그늘을 발견했다.


 얘들아, 후배들아 이곳에 와서 쉬어라. 여전히 고생하시는 엄마,아빠의 등짐을 대신 지고 있거나  배운 게 없어 어리석은 어른들의 무모함에 시달릴 때, 분함을 풀 줄 몰라 너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지쳤을 때. 그리고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여겨질 때, 세상의 끝이 뻔히 보인다고 생각될 때 잠시 앉아 쉬었다 가라.


  40대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한다. 공부에 시달리고  희망 없는 미래에 기대어 쫓기는 형국을 걱정한다. 공부는 힘들지만 시달릴 대상은 아니고 미래는 희망이 있어야 오늘을 무사히 살 수 있다.


내가 학교를 답사하는 명분을 오늘은 찾은 것 같다. 40대인 어른에게도 한참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시간을 넘어 푸르러야할 공간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는 차차 풀어갈 숙제이지만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보다 더 중요한 마음 붙일 곳이 되어주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 함께 나누고 싶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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