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메시지가 있는 문일중고등학교"

 

 

 뭐, 시대를 그렇게 타고 났다고나 할까. 나에게는 설레는 청춘시절보다 청소년시절이 화려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 나의 궁금함의 원천이 됐던 곳 중에 하나가 바로 문일고등학교이다. 이제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곳을 스스럼없이 들어서는 중년의 둔탁한 감성이 남아있을 뿐.
 우선 정문으로 들어서니 육중한 돌 위에 “自主, 自立”이라는 문귀가 보인다.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교문 앞의 첫 번째 메시지다. 잘생긴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우뚝 솟은 표석에 교훈은 이 학교 설립자이신 김영실선생의 유훈인듯 싶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근현대의 고초를 겪어온 김영실 선생의 “자주와 자립”은 생존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이 학교에 다니는 문일중고교 학생들의 “자주, 자립”은 뭘 말하는 걸까싶다(정말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 아닐까. 아이들 스스로 서는 것!!! 그렇게 하도록 어른들은 아이들을 놔주는 것!!!).
  운동장 가까이로 오니 또 하나의 기념비와 국기게양대가 있다. 두 번째 메시지가 보인다.
“국혼(國魂)은 살아있다”기념비 뒤엔 백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라는 해설이 보인다. 어휴 이쯤 되면 오늘 이 시대, 이 교정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은 국가와 민족에 대해 생각을 좀 하게 될까?
 문일고등학교의 교정은 작은 산(설립자께서 양을 키우기 위해 선택한 곳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이었을 것이다. 교문까지 언덕을 올라와 다시 운동장쪽으로 내리막으로 스탠드가 형성 되어있고 넓은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축구부 아이들인지 청,홍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 중이다.  역시 학교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는 이들이다.
  수위아저씨 말로는 8월초라 보충학습도 없다하신다. 간혹 보이는 아이들은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라고 하신다. 운동하는 아이들마저 없었으면 학교가 너무 적막했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장 저 멀리 강당 쪽에 세 번째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으로부터 축대가 쌓인 곳에 “너희는 세상에 빛이니 한구석을 밝히라”는 문장이 보인다. 아니 “한구석을 밝히라”라니 이건 또 무슨 의미심장한 소린가.
 학교 건물 안에서도 교훈 옆에 꼭 “한구석 밝히기”에 대한 문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뜻은 깊으나 표현이 쉽고 소박하여 겸손하기까지 한 이 메시지는 다가오기는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제구실 하면 빛을 얻을 것이니 그 빛이 주변을 밝게 할 것이라는 뜻 아닐까.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쉽겠는가. 말의 순박함에 비하여 무거운 속내가 있는 메시지다. 
 그밖에 교정에는 일우 선생의 동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나란히 운동장을 굽어보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메시지다.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의 몫이겠다 싶다. 
  또 다른 메시지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배롱나무(목백일홍)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이 조형물은 추측컨대 졸업한 동문이 학교 교정에 기증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나무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디마디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기개가 쭉쭉 벋어 시원시원 하기는 하지만 너무 강한 기세에 바로 옆에 있는 배롱나무의 줄기와 대조를 이룬다. 강한 날카로움이 나는 불편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학교 숲에서 다른 메시지를 받고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이 학교 숲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그 한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
 어쨌든 배롱나무의 꽃은 붉게 만개했다. 본격적으로 돌아보니 역시나 문일중고에도 오래된 나무가 많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히말라야시다”이다. 이 나무는 측백과 향나무를 섞어 논 듯하다. 하여 백향목이라고도 한다. 솔로몬이 궁전과 성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신성한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성경 에서는 “힘, 영광, 평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독교의 정신으로 설립된 학교인 만큼 “히말라야시다”의 식재는 이유 있는 메시지 인 셈이다. 중학교 건물 3~4층까지 곧게  뻗은 히말라야시다의 줄기가 건강하다. 평범한 나무에 아이들의 힘으로 생명력을 더해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답사길을 마친다.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하는 산책, 그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56호 2013.8.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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