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촛불과 너무도 비슷하다. 대통령은 달라도 정권 초기에 타오른 촛불이라는 점, 권력자들의 민심 외면의 헛발질 덕택에 촛불을 든 인파가 점점 늘어만 가고있다는 점, 외침과 표현은 달라도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 수호라는 근본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 등이 무척 닮아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에 등장한 청소년, 네티즌, 유모차부대, 예비군 등등도 2013년의 촛불처럼 민주주의를 말했다. 표면상은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자유발언대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등장하기도 하고, 민심을 왜곡하는 보수언론을 비판하며, 국민의 삶을 아우르는 교육, 환경, 노동, 민영화 등의 다양한 문제를 거론했다. 결국 그들은 소수 권력이 만들어낸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준엄한 경고를 던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13년의 촛불은 2008년의 연장이며, 더욱 선명하게 진화한 민주주의 수호의 촛불이다. 아니, 어쩌면 음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과 대한민국의 권력을 찬탈하려는 세력의 맨얼굴이 드러나면서 불가피하게 타오른 촛불일지도 모르겠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니, 그것도 현 대통령의 선거캠프가 연관되어 있는 사상 초유의 불법 선거. 21세기판 3.15 부정선거라 불려도 억울하지 않을 이번 사태는 당연히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2008년에도 그랬듯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국정원 댓글 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비리 때문이었다. 얼마전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그는 증인선서 조차 거부했고, 댓글 조작이 국정원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는 국민 세금 아까운 소리만 반복했다. 새누리당은 지금 시청을 가득 매운 촛불을 대선불복 세력이라고 못박는다. 이번 불법 대선이 국정원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캠프가 연관된 합작품이 아니냐며 증거를 들이대도, 그들은 윗선 외압을 폭로한 양심선언의 경찰 수사과장이 ‘광주의 딸’이라는 둥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등 황당무계한 소리만 늘어놓고있다. ‘박근혜가 책임져라’ 구호가 무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다. 오히려 댓글 공작을 하다 들통난 국정원 김아무개 직원의 인권을 걱정하는 아량(?)을 선보인다. 이렇듯 민심을 외면하고, 분노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으니 2008년의 ‘MB OUT’이 등장했듯, 지금 ‘박근혜 하야하라’는 구호도 터져나오는 것 아니겠나.

권력에 눈이 어두운 이들에게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주의 수호의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하고, 더이상 역사를 거꾸로 돌리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호된 매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계속 촛불이 타오를 수 있겠는가이다. 2008년을 생각해보면 꽤나 오래동안 타올랐던 촛불도 참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경찰 소환, 구속, 탄압 속에서 꺼져간 기억이 있다. 지난 8월 15일 벌어진 시위에 박근혜 정부 첫 물대포가 등장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물대포 이후, 명박산성 등장, 시위대 탄압 등 협박과 공포를 조장했듯이, 지금의 박근혜 정권도 귀를 막고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탄압할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2008년과 2013년이 닮아있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혹자는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이 누구 좋으라고 하는 것인가 회의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또 2008년 만큼 시민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고, 시위 문화의 역동성이 상실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2008년에도 내용은 다르지만 촛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촛불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촛불은 그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타올랐을 뿐이고, 이미 타올랐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양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속속들이 촛불로 모여들고 있다. 함께 지켜야 한다. 보호해야 한다. 2008년 촛불이 사그라들자 모두가 조용한 패배감을 맞 봐야했듯이, 2013년 우리가 먼저 무릎 꿇을 수는 없다.

금천 지역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금천구청 앞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있다. 서울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도 매주 꾸준히 범국민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4만명의 인파가 몰려들고 있고, 점점 더 모여들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힘이 거세질 수록 저들의 탄압도 배가 될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이럴때 우리가 서로를 지켜야 한다. 국민이 승리하는 역사, 이것이 우리가 촛불을 드는 이유이고 서로를 보호해야 할 이유이다. 지역에서든 중앙에서든 우리 모두를 위해, 다시 한번 광야로 나서야 할 때다.

오늘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2008년을 회상하며.

백성균 / 전 미친소닷넷 대표

57호 2013.8.23~9.12 지면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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