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자기를 줏대 있게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나로 세우지 못하고 대부분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역할'로 자기를 만난다. 어디 어디 직장인이고, 누구의 배우자며, 아이의 부모라는 역할의 집합으로서 나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자기의 삶을 마치 양파처럼 벗기다 보면 속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런 인간적 위치를 보통 '소외'라고 한다. 마치 집안에서 가구 배치는 자기가 하지만 배치 후에는 배치된 구조에 자기가 규제당하는 것처럼, 일을 하며는 일의 조건에 사람이 맞춰지는 것이 바로 '소외현상'이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한 장면이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주인공이 톱니바퀴의 부속물이 되어 허덕이는 모습이다.
소외된 세상은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것에 의존하는 중독 (현상)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 중독은 물론, 종교를 가장한 주술과 신비주의 중독, 정보유토피아를 가장한 인터넷 게임중독, 광범한 소비 중독,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앞 당겨 착취하는 신용카드 중독까지 다양한 중독현상에 몰리고 만다. 중독은 인간에 대한 낙관과 사랑을 상실하면서 방황하는 삶의 표현이다. 자기 줏대를 잃은 일탈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개인의 어떤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하고, 나아가 미래를 상실하는 중독증은 인간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황금만능, 경쟁과 승자 독식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생각해 보면 청소년의 컴퓨터게임 중독현상이 사회적으로 문제라 하지만 실은 성인들의 디지털 중독이 더 심하다. 하지만 디지털 중독은 큰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사회적 중독들이 있다. 투기 중독, 명품 중독, 학벌 중독, 고시 중독, 색깔 중독, 유흥 중독, 소비중독 등등.
중독은 관계에서의 단절이다. 그 단절을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인간을 도구화 수단화하는 출세 제일, 황금 만능의 자본주의 세상 그 자체다. 그리고 이를 쉼 없이 부추기는 것이 개인적 소유 욕구다. 짐승들은 저축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앞에 손쉬운 사냥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만이 욕구가 충족돼도 소유욕을 버리지 못하고 더 많은 소유에 집착한다. '존재를 유지하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를 확인하는 소유'로 무한 탐욕의 욕망을 만들어 낸다.
4천 원짜리 백반이면 충분히 채우는 시장기지만 수십 수백만 원의 특급 호텔식사가 필요한 것이 인간이다. 이런 소외되고 중독된 욕망을 인간의 본성으로까지 끌어 올리며 겉으로는 친구간의 우정을 속으로는 내신 1등급만을 외치는 위선의 세상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그 탐욕의 결과 인간들은 지구상의 생태위기, 빈부격차의 극대화, 전쟁과 기아라는 지옥도를 만들어 냈다.
이 광란의 질주를 막고 다시 사람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이른바 '운동'이다. 환경운동, 지역운동, 사회운동, 교육운동 등등 '운동'이라는 말에는 지금과 다른 내일을 향한 꿈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처지와 조건을 떠나 자기들의 일상에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나와 새로움을 향한 모든 운동의 주체들에 대해 우리는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최근에 금천에는 경쟁적으로 군부지 개발계획에 대해 마치 자기가 다한 양 내걸린 여야당의 플래카드를 봤다. 문구까지 똑같은 창조성이라곤 벼룩눈물만큼도 없는 플래카드를 보며 정치적 욕망과 부동산에 대한 탐욕을 동시에 읽었고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부동산 아파트 집값이 오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땀을 극단으로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탐욕의 결과 공멸이 될 수 있음을 최근 몇 년간 생생이 보면서도 도대체 성찰 없는 대한민국의 더러운 탐욕을 그 플래카드는 잘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플래카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단언 컨데 금천구는 죽지 않았습니다. 지난 4년간 수능성적 향상 서울 1위! 살아 있네." 곳곳에 달린 비슷한 플래카드의 주최가 평소 알던 한 학부모 단체라는 것에 더 놀랐다. 금천구가 교육 복지를 말할 때 그것은 공교육의 공동체적 강화지 이른바 수월성의 향상이 아닐 것이다. 그럴 바엔 그냥 사교육을 파는 것이 효율적이다. 학부모님들이 바쁜 일상에도 새로운 교육을 만들겠다고 모여 활동하는 것은 경쟁 입시교육에 지친 학생들의 위로와 휴식의 교육, 늦게 알고 천천히 배워도 생에 존엄성은 차이가 없다는 것에 대한 소중한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저 플래카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가장 큰 탐욕이자 중독은 부탐과 학탐이다. 부탐은 부동산에 대한 탐욕이요, 학탐은 일류대학에 대한 탐욕이다. 가족 사랑이라는 명분과 돈에 대한 현실에서 이 두 가지 탐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만들기 위해 여럿이 모여 '운동'을 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수능성적 향상"이라니. 저 플래카드 속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제하고도 도대체 학부모운동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탐욕과 방황과 혼돈(混沌)의 한국 사회를 지역에서 확인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처음 먹은 마음이 바로 해탈이다. 길을 잃지 말자. 내가 내 머리와 발로 서 갈 길을 가자. 거기에 더 좋아진 미래가 있다. 달콤한 것은 중독으로 가는 큰 길일 뿐이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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