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글/ 강전희 그림/ 사계절출판사
언제부턴가 자다깨서 읽다 졸리면 다시 자는 게 내 책 읽는 습관이 돼버렸다. 아마도 큰 아이를 낳고 아이 울음소리에 밤을 뒤척이며 토끼 잠 자듯 한 것이 몸에 익어버렸나 보다. 그렇지만 하필 한밤중에 눈을 떠서 <노근리,그 해 여름>을 손에 잡다니. 아마도 작가의 또 다른 책들, <국화> <야시골 미륵이>가 주는 은은함(?)이 엄청난 비극을 이야기한다는 이 책을 한밤중에 혼자 깨어 읽게 했으리라.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떨고 있었고 결국 그 밤은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학살극이었기에, 게다가 철저히 숨겨졌던 역사이기에 더욱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에는 동조한다. 피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으고, 취재에 발품 팔았을 작가의 노력과 열정에도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조금만 더 편안하게 읽혀졌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을 접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나 어른들 입을 통해 툭툭 던져지는 말들-특히 전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도 거슬렸고, 적나라한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상황묘사들 때문에도 읽어내기 힘들었다. 이런 소재를 다루더라도, 문장은 편하게 읽히면서도 독자 가슴을 온통 휘어잡아 먹먹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의 기록과 문학적 표현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새삼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마을 옆 철도가 지나가는 커다란 쌍굴로 미군은 피난민을 몰아넣고 무차별로 학살한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름의 굴 안에서 쏟아지는 미군의 총알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흘은 지옥보다 더 끔찍했다. 한사코 은실을 보듬던 엄마는 총탄을 등에 맞고 숨을 거둔다. 참혹해지는 엄마의 시신과 같이 보내며 핏물과 구더기로 연명한 은실, 충격으로 말을 잃는다. 인민군이 내려온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죽기보다 가기 싫었지만 노근리로 되돌아가 엄마의 시신을 찾아 묻고 나뭇가지로 표시를 해둔다. 늘 업어키웠던 동생 홍이를 잃어버린 언니 금실은 미쳐서 돌아오고 그 언니가 쌍굴 옆에서 목숨을 버린 날, 자신 옆에서 죽은 엄마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가 돌아올 것을 간절히 바라던 은실은 오열하며 말문을 터트린다. 충격에 미쳐버린 금실 언니는 결국 죽고 애써 묻은 엄마의 시신 역시 끝내 찾지 못하고가슴아파하던 담임선생도 잡혀가고 아빠가 부역을 한 것에 눈치가 보여 결국 학교도 그만두는데 은실의 아픈 가슴 속에 새겨지는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또렷한 다짐만으로 과연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고 새엄마가 들어오고, 은실이 새엄마의 딸인 단비를 받아들이지만은실의 삶이 너무나 아프고 아프다 무차별적인 죽음 앞에서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나도,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도 살을 째는 아픔을, 말을 잃는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고통으로 견딜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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