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구엔 지압(武元甲) 장군을 아시나요.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베트남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에 헌화했다. 침묵의 헌화였지만 언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헌화와 참배는 행동으로 보여준, 그 자체가 강한 화해의 제스처'라고 보도했다. 베트남의 호 아저씨에게 헌화를 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이후 세 번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트남 정상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 말을 두고 <6.25전쟁 참전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참전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이전 모습과 비교해서 상전벽해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전이라고 세뇌해온 월남파병을 베트남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베트남 꽝응아이에는 한국군의 행위를 기록한 비석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1966년 12월 5일 정확히 새벽 5시,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을 해왔다.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였다. 다음날인 12월 6일, 그들은 계속해서 꺼우안푹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비단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슬프다.
베트남의 현대사는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역사다. 프랑스 일본 미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침략은 베트남을 분단과 부패와 가난의 고통으로 내 몰았다. 하지만 베트남은 그 모든 시련을 이겨냈다. 아직 우리가 제국에 의존하여 분단을 지배의 조건으로 삼는 세력을 극복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베트남의 역사는 위대한 역사다. 그 역사의 상징이 호치민이라면 , 상징의 무기가 보 구엔 지압(武元甲) 장군이다. (물론 상징이 실제를 대체할 수 없다. 반제 통일전쟁의 진정한 주역은 당연히 베트남 민중들이다.)
보 구엔 지압은 프랑스 침략군을 물리 친 디엔비엔푸 전투, 68년 이후 전개된 월남 전쟁, 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 등에서 승리의 사령관이었다. 외신들에 의해 '붉은 나폴레옹'이라 불렸지만 그는 조국을 해방하고 수호했지 나폴레옹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최고의 명장인 그가 타계했다. 그는 한국 파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유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더 이상은 미국과 프랑스를 미워하지 않는다. 한국군들이 베트남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고 있지만 역시 미워하지 않는다.
역사를 알고 있지만 그 역사를 이유로 현실과 미래를 뒤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아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가 매년 진심이 담기지 않는 일본의 역사적 사과에 매달리는 것에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그것은 그들이 프랑스와 미국으로 대표하는 식민지의 치욕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저력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독특한 베트남 식 인간관이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베트남은 매우 독특한 존재입니다. 전세가 아무리 불리해도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간 외세를 몰아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승리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결국 전쟁을 끝낸 것은 물자가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확신이었습니다.” 보 구엔 지압 장군이 본 베트남의 특성이다. 수천 년 강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온 것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세의존의 한반도 분단이라는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군작전권을 제발 맡아달라는 극단의 사대주의 수치를 감수하는 한국현실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전쟁의 적을 미워하지 않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을 군인의 눈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와 형제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을 든 그 순간은 적이지만 총을 놓는 그 순간 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로 상대를 보는 것이 베트남식 사고다. 그렇다. 전쟁은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극단의 이기적 탐욕의 결과이며 노동자 민중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욕심의 희생자에 불구하다. 그러니 최악의 평화가 최선의 전쟁보다 났다는 말이 존재한다. 종북몰이를 하는 증오와 대결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세상이지만.
돈의 요기에 빠져, 돈으로 모든 것을 다 재단하는 세상에서, 애완견의 편함으로 야생견의 자유와 자주를 비웃는 세상에서, 베트남 민중들과 보 구엔 지압 장군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해방과 자주를 짓밟고, 그들도 아닌 침략자 미군의 고엽제에 대를 이어 희생을 당해도 미국만세를 외치는 이상한 나라에서도 역사적 참회가 있음을 새기기 위해서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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