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쿠시맨 지음 / 배미자 옮김 / 다른 펴냄
'은은한 향기 '
처음 필리파 피어스의 작품을 보았을 때 크게 벌이지 않고 일관되게 절제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충격이기도 했다. <너는 쓸모가 없어>, 이 책도 그랬다. 다 읽고 나서 산파가 쓰는 약초의 은은한 향기 나는 작품 하나를 읽은 기분이 들었다. 거리의 아이로 쇠똥구리로 불리던 아이는 산파인 제인의 조수가 되면서 앨리스라는 자신의 이름도 갖게 된다.
아이를 낳는 것, 즉 생명의 탄생과 이를 도와주는 앨리스는 산파의 일에 흥미와 자긍을 느끼지만 산파는 쇠똥구리를 있는 데로 구박한다. 자신이 훌륭한 산파가 될 수 없다고 좌절하여 제인의 집을 뛰쳐나간 앨리스는 그러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산파가 되기 위해 다시 제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영국, 암흑기로 불릴 만큼 답답하던 당시에 아이를 낳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 일이었을까. 그런 산모에게 산파는 약초와 시럽과 주문으로 위로하고 아이를 낳을 힘을 북돋아준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에게 생명의 탄생,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가슴 벅찬 기쁨이기도 하지만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을 연상케 한다.
청소년들이 아이를 낳은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가 조금은 의문이지만 그러나 앨리스가 산파가 되어가는 과정, 자신을 쓸모가 있는 자긍의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담담하면서도 그렇기에 차근차근 읽는 이를 압도하는 설득력을 지닌다. 살아가면서 '너는 쓸모가 없어'라는 마음속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그 두려움에 산파 제인은 이렇게 답한다. " (...) 시도하고 위기에 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수습생이 필요한거죠.산파가 포기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그만두진 않아요." (*)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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