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희럭키구로공단’은 구로구의 가리봉동과 금천구의 가산동 및 독산 3, 4동 일대를 생산과 이주라는 두 주제로 투어하는 프로그램이다.  총 세 차례로 나누어 연재되는 ‘락희럭키구로공단’ 마을투어에 관한 마지막 연재로, 지난번 ‘생산의 길’에 이어 지역 내 이주민들의 일상을 탐색하는 ‘이주의 길’ 코스를 구성하는 경로지들 및 관련 이야기들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1화] 2013/12/17 - 생산과 이주는 금천구를 이해하는 키워드

[2화]  2014/01/23  - [락키럭키2화]쌍입술, 외입술, 후다입술의 차이를 아세요?







옛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지역의 거주자들은 알고보면 ‘모두가’ 이주민들이다. 도시개발의 여파로 강제추방 당해 쫓겨 온 철거민으로 시작해,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수출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젊은이들, 그리고 현재는 내국인이 외면하는 힘든 노동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외국적 이주민들까지, 이 지역의 대부분은 어려운 삶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혹은 푸른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나 자란 곳을 등지고 떠나 온 이주자들이다. 

구로공단 설립 전후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50년이 넘는 이주의 역사와 풍경은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매우 미약하다.  외국적 이주민에 대한 통계자료 등이 정리되어 있을 뿐 그들의 일상이나 내국인들과의 교류 혹은 갈등 방식, 혹은 그들 간의 공동체에 대한 지역적 차원의 깊은 연구나 관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의 길’ 코스의 구성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과제였다. 

수 차례의 현장 조사 및 몇몇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3개월의 연구 기간 동안 이주의 역사가 지닌 복잡한 이야기들을 다층적으로 끄집어 내고 다른 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로를 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미숙한 연구를 기반으로 장소와 이야기들을 억지스럽게 끼워맞추기 보다는 상상력에 근거하여 이주민의 일상을 투어자 스스로가 탐색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는 전략이 간구되었다. 

즉, 두 명의 가상 이주자들과 그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일상 공간들을 탐색하도록 설계되었다. 가상의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문헌조사와 일련의 현장답사 등에 근거한 가설적 경로들로, 투어자는 이 가설적 경로를 직접 떠돌며 ‘이주의 진실’을 스스로 완성해 가는 또 하나의 이방인이 된다. 

가상의 두 인물들은 공단시절 상경한 ‘내국적 이주민 김모씨’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중국 연변을 등지고 조상의 고향을 찾아 온 ‘조선족 이주여성 리모씨’로, 이 두 사람은 동일 장소를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고 상이한 문화적 사용법을 취하면서 ‘스치지만 접속하지 않는’ 중첩된 일상의 동선을 영유한다.       

현재진행형 이주민이라 볼 수 있는 조선족 이주여성 리모씨의 이야기는 퇴근길의 종착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시작하여 새벽인력시장이 열리는 남구로역에서 끝을 맺는다. 

그 사이를 안정된 주거권인 비자의 획득과 관련된 기술학원 및 행정사 사무소들,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인력사무소들, 고국의 사교춤 문화를 맛보고 고된 노동의 시름에서 벗어나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장소인 무도회장, 고향의 먹거리들이 즐비한 옌벤거리와 가리봉 시장, 단골 음식점들과 옷가게, 저렴한 월세집인 쪽방, 해외전화카드와 간단한 주전부리 등을 구입하고 동포대상으로 배포되는 신문도 구할 수 있는 중국전화방,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고 스스로 치안의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설립한 외국인자율방범대, 어려운 시절 저렴한 이용료로 숙식을 해결해 주었던 재한동포나눔의쉼터 등이 경로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리모씨의 경로는 대부분의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설계되었다.  

이제는 어쩜 동네 토박이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공단의 일손이 부족한 시절에 상경한 이주민 김모씨의 이야기는 리모씨의 경로 순서와 반대로 인력시장이 열리는 남구로역에서 시작해 가산디지털단지역, 그러나 김모씨에겐 여전히 가리봉역인 그곳에서 끝을 맺는다.

그 사이에는 일자리를 못 구한 날 또 다른 행운을 바라는 마음에 애용하는 복권가게, 이제는 어엿한 자기소유가 된 공영주택, 작업복과 안전화를 파는 가게들, 저렴한 하룻밤 잠자리가 되어주었던 심야만화방, 아내가 다니는 가리봉 교회, 그 앞의 오래된 마을장소들인 신일문구사와 백련다방, 패션아울렛 단지들이 생기기 전 패션아울렛의 원조 중 하나였던 가리봉 시장과 근처의 옷가게들,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 기울이곤 했던 공단식당, 지금은 하이힐로 뒤바뀐 젊은 날의 작업장 대우어패럴 등이 경로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모씨의 경로는 공단시절을 전후로 시작된 이주문화와 관련하여 현존해 오고 있는 오래된 동네장소들을 추억하거나 노동의 삶을 기억하도록 설계되었다. 

리모씨와 김모씨로 상정되는 가상의 이주민들의 이야기는 사실 정직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꿈을 쫓는 모두의 삶을 빙의한다. 

동일 장소들을 다른 시간의 이주경험으로 채운 두 인물의 공통 키워드는 바로 ‘꿈’이다. 일이 있는 한 삶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 청령한 에너지를 생성해 내는, 급속하게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건강한 이 한 몸 있다면 미래가 두렵지 않은,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는 용기와 결단을 갖게 한 바로 ‘그 꿈’ 이다. 


옌벤거리에 처음 왔을 때 찐삥(중국식 부침개)을 사며 설레였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나 그리웠던 고향의 음식들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느꼈던 반가움과 유독 늘 배가 고팠던 이주 초창기의 나날들. 여전히 이런저런 꿈으로 가득차 있던 그 나날들을 리모씨는 잊을 수 없다.  (리모씨 이야기 중)

가파른 세상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는 재주가 부족해 그저 정직하게 노동하며 삶을 일궈 온 김모씨에게 가리봉역 가는 길은 변함없이 1978년이다. 전남 고흥서 사촌형을 따라 올라온 서울, 열일곱 청춘의 꿈을 나이 오십줄이 넘은 지금에도 되새기게 해 주는, 이루지 못한 성공이 아쉽기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게 해주는 푸른 길이다. (김모씨 이야기 중)




2013년 하반기 이주문화에 관심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3회의 시범투어가 이루어졌다. 애초에 설계된 6회 차를 채우지 못한 이유는 조기마감된 생산의 길과 달리 이주의 길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주 원인이었다. 

이는 이주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외면당하고 있는지를 반증해 주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제도시 서울을 지향하며 매년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가는 해외 이주민의 비율에 비해 타 종의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교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우리 사회의, 개인의 의지는 매우 박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에 진행된 3회의 투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중국문화에 대한 궁굼증들을 친절하게 해갈해 주신 이주여성 해설사 김타다씨 역할의 주요함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과 가까이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정임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들이었다. 

아울러 이주의 길 중간쉼터로 기꺼이 장소를 할애해 주신 백련다방 사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의 길과 이주의 길을 자유여행하고 싶은 개인 투어자들을 위해 구축된 웹사이트를 소개하면서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모바일 환경에서 최적화되어 있으므로 손에 든 가이드를 따라 혼자서, 혹은 동네 친구들과 날 좋을 때 조금은 긴 산책을 나서보시기를, 그곳에서 생산하고 꿈꾸는 삶의 에너지를 다시금 느껴보시기를 권한다. 락희럭키구로공단 웹사이트 주소는: www.gurogongdan.org


최영숙 (셀프메이드시티 대표 / 락희럭키구로공단 총괄디렉터)


* 락희럭키구로공단은 서울시 '2013 자치구 동네관광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사업으로 <금천구>와 <금천문화원>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에서 진행한 사업이다. www.facebook.com/luckygongdan

* 3회에 걸쳐 연재를 해주신 최영숙 대표님과 자바르께 관계자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편집자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