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역사를 왜곡 조작하는 일본 아베 수상과 박근혜 대통령을 동시에 비판했다. 군국주의자를 자처한 아베는 영혼과 뼈 속까지 군국주의자였고, 민주주의보다 유신 독재가 났다는 박근혜 정부는 DNA부터 유신 독재였다. 그러니 방관자명(傍觀者明)이라고 교학사 문제로 역사전쟁 운운하는 남한이나 군국주의 놀음하는 일본이나 제3자의 눈에는 오십보백보이고, 똥 묻은 개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게다가 최근 안중근 의사에 대한 한중일 평가를 보면서 입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구에게는 애국자요 누구에게는 테러리스트인 안중근은 천사일까 악마일까? 일본도 맞고 중국도 맞고 한국도 맞는 것일까? 그렇다면 역사적 진실은 존재할까? 그래서 사람은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은 도대체 어느 입장에 서있는가? 그것은 당연히 약자의 입장, 피해자의 입장,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 옳다. 그럴 때만 우리는 비로소 올바른 입장(立場)을 견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신독재를 옹호하면서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요 거울 보며 싸우는 격이다. 

1974년 2월 20일 한 일본군 장교가 30년 만에 필리핀 정글에서 나와 항복을 했다.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전 일본 소위다.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투항하지 말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필리핀 루방 섬에 상륙(1945년 3월)한 그는 미군과 전투에서 패배하고 40여명만 살아 정글로 도주했다. 그리고 일본의 항복 사실도 모른 채 항전을 거듭했다. 패전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은 투항했지만 오노다 소위는 3명의 사병과 함께 더 깊은 정글로 들어갔다. 1950년에 1명이 투항하고, 1954년과 1972년에 2명마저 사살되어 혼자가 됐다. 미군이 일본의 항복 사실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고, 일본 정부와 가족 역시 수차례 현지를 방문해 투항을 권고했지만 오노다는 여전히 일본의 패전 사실을 믿지 않고, 멀리서 가족을 보았을 때도 미군의 공작이라며 외면했다. “명령이 없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 이것이 오노다가 29년 4개월을 산속에서 보내다 만난 동료에게 한 첫 마디였다. 그러면서 직속상관이 직접 와서 명령을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직속상관이 와서 설득해도 처음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일본은 오노다의 요구대로 과거 직속상관에게 구(舊) 일본군의 투항명령문을 보냈고, 1974년 3월 10일 필리핀 공군사령관에게 일본도(刀)를 넘겨주며 정식으로 항복했다. 

처음 발견 당시 머리는 일본군 규칙에 따라 짧게 깎았고 복장은 단정했으며 소총은 반짝반짝 손질되어 있었다. 항복한 그날 밤 오노다는 30년 동안의 루방 섬 정찰 및 전투경과를 과거 상관에게 보고했다. 3월 12일, 22세 청년에서 52세 중년으로 변해버린 오노다가 귀국했을 때 일본 국민은 “일본 군인정신의 부활”이라며 열광하고, 우익들은 “일본 정신, 즉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굳게 지킨 영웅”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오노다는 이듬해 브라질로 이주한다. “전후의 일본에서 과거의 일본적 가치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런 오노다가 2014년 1월 17일 91살을 일기로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 (고인이) 긴 세월 정글에서 생활한 강인한 의지와 개척 정신으로 힘차게 살았다"며 "진심으로 명복을 빌고 싶다”고 했다. 오노다가 말한 ‘일본적 가치’라는 게 뭘까? 일본 관방장관이 찬양한 '강인한 의지와 개척 정신'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오노다는 구일본군이 고급스파이를 양성하던 나가노(中野)학교 졸업생이라고 한다. 오노다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힘도 나가노에서 배운 남을 속이고 공작하는 기술을 배운 덕이 아닐까? 그러니 전쟁이 끝났으니 투항하라 등등 설득을 죄다 속임수, 선전전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노다가 “인간승리”의 표본쯤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군으로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그가 강인한 의지로 행한 것이 무엇인가? 최근 아베와 극우 일본의 행보를 보면서 이 같은 맹목적이고 비정상적인 강인함에 우리는 소름이 돋고 치가 떨릴 뿐이다. 일본의 가치는 바로 이런 정상적일 수 없는, 남과의 관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 있다. 비유하자면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강인한 정신으로 살인강도를 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할 수 없는 관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일본 정신, 일본적 가치는 그저 광기(狂氣)다. 그리고 이 광기가 내재한 폭력성국가주의 애국심에 도취된 맹목성이 그대로 남한에도 청산되지 못한 채 이어졌다. 식민지 잔재청산 없이 친일에서 친미로 이어진 남한 정권은 사대와 독재와 그리고 잔혹한 승자독식의 천박한 탐욕과 야만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그 치욕의 역사를 승리사관을 세우자며 교학사 교과서를 통한 역사적 쿠데타는 밀고 갔던 모습을 통해 우리 안에 일본식 광기가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줬다. 

그럼으로 일본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인류적 가치, 평화와 우애 그리고 친선에 근거한 역사적 입장의 소중함이다. 특히 최근 종북 소동 등을 통해 한국말을 쓰는 일본 극우세력들이 얼마나 많고 그들의 광기가 얼마나 집요한지 실감하지 않았는가? 대립과 증오로만 뭉쳐진 광기를 우리 스스로가 씻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똥 묻는 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민주와 인권 평화와 통일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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