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을 위한 끝장토론회가 열렸다. 세 살배기가 봐도 연출된 토론회다. 토론회에서는 규제라는 악마에 철천지한이라도 쌓였는지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주류언론에서는 아예 장문의 주석으로 대국민 세뇌 선동에 나선다.
그 결과 "TV 생중계로 회의를 지켜본 국민이라면 이 나라가 왜 규제왕국으로 불리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규제를 ‘암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로 부르는지 잘 알게 됐을 것이다."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근데 이상하다. 토론이라는데 토론을 할 당사자가 없다, 보통 토론이란 다른 견해가 있고 그들이 시시비비를 가려 소통과 합의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야당이나 비판적인 시민운동가, 아니면 한국노총 같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토론자라도 있어 구색을 맞춰야 했다. 이런 최소한의 염치를 보여주는 장치도 없이 진행된 토론은 부자들의 부자들만을 위한 잔치였다.
이 날 끝장토론의 의미, 규제개혁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은 호텔 신축에 대한 토론이다. 그날 개발업자에 의하면 호텔 등 유흥업소는  3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서 학생들의 입시 난과 취업난을 해결하는 길이다. 근데 무식한 주민들이 학생들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학습을 할 권리가 침해된다며 반대한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박근혜는 "시대에도 안 맞는, 현실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인해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 막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 하여 주민들을 죄인으로 단정한다. 결국 규제 개혁은 학생들의 학습권 대신 호텔 관광업자의 이윤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또 규제완화라는 말을 규제개혁이라고 포장했다. 개혁이라 하면 뭔가 진보적이고 발전적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하면 마치 발전에 반대하고 자기 이기주의에 매몰되는 세력으로 몰리게 된다. 거기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아예 “규제개혁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 읽는다.”라고 하여 자본을 위한 정책을 일자리 정책이라고 둔갑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발전은 구조정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줄여 온 것이 그들 아닌가?

근데 이놈의 규제는 얼마나 대단하기에 누가 만들었기에 모든 정부가 사활을 건 듯 규제완화 철폐를 외칠까?
박정희는 70년대 말 ‘국내외 경제 환경의 급변’했다며 ‘민간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내걸고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했다. 전두환은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원회’, 노태우 정권의 ‘행정규제완화위원회, 김영삼 정권에서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이라고 하는 거창한 규제완화 정책을 실시했다. 김대중 정권도 97년 IMF 사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발족하여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한 규제완화, 민영화의 촉진,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 신용카드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 역시 국제 금융시장 개방과 금융규제 완화에 나섰다.
이명박도 2012년 7월 지금 박근혜 정권과 똑 같이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를 오후 3시에 시작돼 자정쯤까지 장장 10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그 결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재건축 부과 중지처럼 부동산 건설과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과 골프장 소비세 인하와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 규제 완화, 호텔 관련 건축 규제 완화 등 전면적인 규제완화책을 내왔다. 부자들을 위한 선물이다. 그런데 또 무슨 규제가 남아있단 말인가?

원래 규제완화 정책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정수들이다.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전 세계 공황이 발발 한 후 규제완화로 고삐가 풀린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 공황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금융통제를 강화하고 금융시스템을 규제하자고 나섰다. 국제 부르주아 대표자들이 모인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 심지어 극우 조선일보조차도 자본주의 4.0 시리즈 운운하며 규제라는 고삐 풀린 미친 자본은 외려 ‘암 덩어리’취급했다. 대신에 규제가 있는 ‘따뜻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대안이라 추켜세웠다. 이런 흐름을 이용하여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통령(관권부정선거로 무효다)이 된 사람이 박근혜다.
하지만 성찰의 시간이자 망각의 시간은 1년이었다. 지난 2월 취임 1주년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언급이 단 한마디도 없다.
복지라는 말도 한번 나오는데 복지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지가 부채의 원인이라면서 복지를 공격하기 위해 언급했다. 그리고 이날 자본을 위한 규제완화를 내걸었다.
결국 규제완화란 자본의 이윤 획득에 방해되는 모든 것, 그것에 저항하는 모든 계급과 세력을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로 규정하며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규제와의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다. 전쟁상대는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과의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아시아경제,  2014.03.20)
그런데 이 전쟁이 상대는 누군가? 언론에 의하면 규제개혁 4대 전선(戰線)을 국회, 지자체, 공무원과 이해단체라고 규정했다. 국회는 새누리당이 집권당이고 지자체도 대부분이 기업하기 좋은 고장 만들기에 혈안이니 문제가 아니다.
결국 문제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그리고 이해단체로 말해지는 노동조합과 서민들이다. 학생의 학습권을 걱정하는 사람들, 막개발과 투기로 주거권이 부정되고 생태 파괴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 증진을 원하는 사람들, 좋은 일자리에서 안정되게 일을 하고픈 사람들, 그를 위해 노력하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쳐부숴야 할 적이 된 것이다.
규제는 복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절제의 다른 말이다. 그러니 규제철폐 전선에서 저들의 승리는 노동자 민중의 패배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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