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끈다. 슬픔이 중계되는 저 무한 반복의 세뇌가 싫어 뉴스를 끈다. 그런데 나도 몰래 또 TV를 켠다. 단 한사람이라도 생환의 기적이 있을까봐 뉴스를 튼다. 슬픔이 하늘과 땅을 메웠다. 나라가 집단적 우울증이 걸렸다. 왜 이런 사회가 됐을까? 왜 이리 잔인하고 천박한 세상이 됐을까? 세월호가 사고를 당한 것은 대부분 우연일 것이다. 누가 사고를 내고 싶어 낼까? 인재라 따지지만 그래서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의 책임을 묻지만, 나아가 그 책임으로 왜 살았는가를 추궁하지만 다 부질없다. 인재도 개별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후한 선박이 규제 완화를 틈타 도입되어 균형을 깨는 개조를 당한다. 그 노후한 선박을 운행하는 사람도 노후하거나 경험 없는, 오직 싼값이라는 장점, 마구 시키고 오래 시켜도 제 맘대로 자를 수 있는 영혼 없는 노동, 비정규직이다. 싸게 오래 일을 시켜도 임금은 절반에 절반, 이 자랑찬 경영으로 받은 상장만 네 개, 이제 와서 질타를 해대는 훈장 주던 이들의 급변에 선장도 당황했으리라. 세월 호는 대형 참사를 향해 차근차근 전진했다. 부정부패로 경영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쥐어짜고 규제 해제라는 치명적인 안전 가이드라인을 풀자 이윤에 눈이 멀어 노인의 몸에 비아그라만 퍼붓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고는 필연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용불안과 불안전 고용은 우리의 생명을 언제나 바람 앞에 촛불로 만들었다. 일자리 창출한다며 일자리를 파괴하는 기괴한 짓이 유능한 경영으로 칭찬 받고 일자리를 파괴해야 주가가 오른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말로 자본을 위해 생명을 일회용 기계쯤으로 만든다. 이것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량학살 정리해고다. 정리해고는 인사 경영의 모든 책임을 진 자본이 자기의 잘못을 노동자의 생존의 파괴로 메우는 짓이다.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이 사형을 당하라고 한다. 자본은 노동자가 사형당하기 전에 자살을 권유한다. 그게 이른바 명예(희망)퇴직이다. 그리고 도려낸 자리에 처음부터 노예인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들로 채운다. 이 노예화의 길에 저항하는 노동자는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 자체가 대형 사고와 재앙의 진정한 뿌리다.  

8,320명. 세월호의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를 보면서도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숫자다. 한국 사회의 구조조정과 민주노조 파괴의 상징 KT에서 발생된 일이다. “이석채 전 회장은 3천억 원을 투자한 인공위성을 고철 값도 안 되는 수준인 5억만 받고 홍콩에 매각하더니, 황창규 현 회장은 당시 물러난 윤리경영실장 등 중책들을 KT고문으로 불러들이고 노동자에게 부실 경영의 책임을 전가했다”(참세상) 이것이 노동자들의 속마음이지만 KT는 별 저항 없이 지난 10일부터 근속기간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명예퇴직에 총 8,320명이 신청을 받았다. 고비용 저효율 인력구조를 개선하여 매년 약 7000억 원의 인건비가 감소돼 회사 체질개선이 이뤄질 것이라 한다. 당연히 교육비 지원 등 복지는 축소됐다. 고객 서비스 분야의 공백을 막기 위해 연관 사업 분야를 출자 사에 위탁할 계획이라 한다. 정규직을 하청 노동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1인 영업점’ 창업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퇴직금을 노리며 핸드폰 판매 다단계 사업을 하겠다는 말이다.  

 더욱 사악한 것은 반드시 이어지는 뉴스다. "KT가 구조조정에 따른 효과 기대에 장 초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KT는 오전 9시26분 현재 전날보다 400원(1.27%) 오른 3만18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일터를 파괴한 것이, 한 가족의 생존을 벼랑 끝에 몰아넣는 것으로 돈을 번다는 악마의 장사꾼들이다.  이렇게 세월호의 비참을 만든 짓이 세월호의 슬픔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은 명예퇴직이 자살이라는 것을  KT 사측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둔 KT가 지사들이 위치한 건물 옥상을 폐쇄할 것을 지시했다. ‘자살방지’를 위해서란다.  

세월호의 사고를 막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뭘까? 우리는 일터를 충분히 존중받는 보람찬 노동으로 채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대우"는 노예로 하면서 "책임"은 주인으로 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사회를 깨는 것이다. 그 출발에 민주노조가 있다. 노동3권의 기본을 지키는 민주노조는 인간 존엄과 경제 민주화의 최소 전제다. 저 선박회사에 민주노조가 있었다면 이런 엉터리 사고는 일어 날 수 없다. 

가진 자들이 가장 무섭거나 귀찮은 것이 무엇일까? 노동자들이 깨어있고 뭉쳐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산산이 부서져 있는 모래알로 만들려고 한다. 연봉제니 성과급이니 하는 모든 말들이 노동자들을 생각하지도 단결하지도 못하게 하자는 흉계다. 제 잇속만 차리며 살라는 양아치 노예를 만드는 흉기다.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 서열을 만들어 차별을 강제한다. 아웃소싱이라는 회사의 분리를 통해 또 다른 차별을 만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의 힘, 민주노조를 파괴한다. 언제나 사고는 자본 앞에선 구조적 필연이 아니라 그저 재수 없는 일일 뿐이다. 

거기에 뭔 짓을 해도 돈만 되면 된다는 명박표 몰염치정치, 어떤 짓을 해도 버티면 된다는 근혜표 파렴치정치가 재앙을 부추긴다. 나만 살면 되고 그러기 위해 동료를 밟고 나가야 한다는 비겁한 일상이 정상이라 우겨대는 사람들이 재앙의 낭떠러지로 달려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이코패스로 살라는 지옥, 대한민국의 현실이 누구 말마따나 명품으로 도배한 미개사회다.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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