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SNS에 자주 등장하는 금천주민이 있다. 거의 삭발에 가까운 스포츠 머리에 늘 웃는 얼굴의 그는 금천구 곳곳과 광화문 거리, 이스라엘 대사관 등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SNS에 올라와 눈길을 집중시켰다. 특히 6.4 지방선거기간동안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를 비롯한 새누리당 청년 당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도와주세요’라는 입간판을 설치하고 석고대죄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런데 바로옆에서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그의 사진이 SNS에 퍼져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독산동에 사는 박중언 씨(44세)이다. 

지난 13일 저녁 박중언 씨를 만났다. 평소 과묵한 모습의 그 이기에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숫기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차분한 말투로 조근조근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4ㅏ빠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께요.

저는 신길동에서 태어나서 구로동에 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산동에 이사 와서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독산동에서 살고 있어요. 네 자녀의 아빠이고요. 직업은 프로그램 개발자인데 지금은 행정시스템 유지보수 사업단에 있어요. 이 회사에 근무한지 10년 가까이 됩니다.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형제는 제 위로 누나가 하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는데 누나하고 동생은 성격이 활달하고 저만 내성적인 편입니다. 

머리가 항상 짧던데요. 이유가 있나요?

옛날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96년도부터 환경단체에도 가입하고 활동을 하면서 머리가 짧은 게 환경에도 더 좋을 것 같아 그때부터 삭발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고기도 안 먹는다고 점심도시락도 싸 가지고 다녔어요. 요즘은 끝과 끝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길러보려고요.


요즘 SNS에서 활약이 대단하시던데요. 특히 새누리당 청년당원이 석고대죄를 하는데 그 옆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  웃기고 자빠졌네 그거요?  그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였어요. 당시 금천시민연대 분들과 선거를 독려하는 문구를 적은 박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었는데요. 그 전날 금천시민연대 몇몇 분이랑 술자리에서 제가 광화문에서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피켓을 들고 출근을 못했어요. 그런데 약속은 지켜야 하잖아요. 

그날 새누리당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회사가 광화문 근처에 있는데 출근해서 무엇을 들까 고민하다가 회사 도서관에서 빌린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A3용지에 그 문구를 출력해 가지고 나갔죠. 

사실 인터넷에서 그렇게 뜰지는 몰랐어요. 그동안 연락도 없던 고등학교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사진이 SLR 이라는 인터넷 카페랑 뽐뿌, 오늘의 유머 등의 게시판을 비롯해 페이스 북 등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는 거에요. 나중에 제가 포털에 검색해 보니 그 사진이 뜨더라구요. 


요즘엔 어떤 피켓을 들고있나요?


제가 원래 1일1식을 해요. 새벽에 일찍 나가니까 잠이 부족해 점심때 잠을 자거나 하는데 요즘에는 생각 날 때마다 1인 시위를 하고있어요. 목요일엔 금천촛불이 세월호 촛불집회를 하잖아요. 전 광화문에서 세월호 피켓을 들고있어요. 가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데요. 가능하면 수요일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목요일엔 광화문에서 하는 것으로 하려고 해요. 


이런 활동들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SNS에서 닉네임으로 ‘나는 4ㅏ 빠다.’를 쓰고있어요. 이 의미는 ‘나는 네 자녀의 아빠다’란 의미에요. 우리아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하고, 수사권,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있는데요, 그들은 '내가, 내 아이가 당한 일을 다른 아이들은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에요. 만약에 그들이 대학특례나 보상금을 더 받기위해서 시위를 한다면 내가 그들과 동조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교조나 다른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피켓을 드는 것도 내 아이들이 옳은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게끔 배움을 주는 사람들이 전교조 선생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전교조가 100% 다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대한 배움의 길을 옳게 열어줄 수 있는 조직은 전교조라 생각해요. 

이스라엘 피켓을 드는 것도 그들이 아이들만 골라 죽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SNS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뉴스를 보면 왜 놀이터만 폭격을 하는지, 군인이 10명 죽으면 민간인은 400명 넘게 죽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아이들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빠이니까요. 


내일 아내분 생일이라면서요. 아내분께 한마디 전할 말씀이 있나요?


그냥… 생일 축하해. 앞으로 잘 살자. (굉장히 부끄러운 듯, 짧게 대답함)


지면의 한계로 인터뷰 내용을 많이 간소화 했다. 그는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많다고 한다. 야근 대신에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을 한다는 박중언 씨는 말 그대로 새벽형 인간이었다. 라디오 방송작가였던 아내 조정옥 씨와의 러브스토리, 자기도 모르게 아내가 노사모에 가입을 시켜놨던 이야기, 언론에서 사실을 사실로 보도하지 않고 사실축소나 은폐하는 행태를 보면서 대안언론의 필요성을 느끼고 국민TV 열혈조합원이 된 이야기 등 2시간여 동안 정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인터뷰 끝에서 내일 생일인 아내에게 한마디 하라고 하자 무뚝뚝하게 던진 ‘잘 살자’라는 한마디. 그는 늦은 인터뷰가 끝나고서도 새벽에 일어나 아내를 위해 미역을 불리고, 조기를 구워 생일상을 차렸다고 한다.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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