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호  2014. 9.1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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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마을 곳곳에서 만날수 있는  성경씨 


취재를 하기위해 마을 곳곳의 축제나 행사 등을 찾을 때면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있다. 구청장 및 관계공무원이야 당연한 것이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나 마을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이렇다 할 보수도 없이 오로지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최근에는 정성경(43세, 시흥3동)씨와 자주 마주친다. 마을지기 워크샵에서, 해노리장에서, 각종 마을활동가 네트워크 모임 등에서 그녀를 만났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자주 만나게 되는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 졌다. 


중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만 둘을 두었다는 정성경 씨는 3년 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경기도 산본에서 시흥3동 박미마을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금천구로 이사를 왔다는 그녀의 말에 의아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시에서 안정적인 환경은 좋았지만 교육적인 부분에서 학원에 많이 보내고, 경쟁이 과열되는 환경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 자유롭게 생활을 하게하고 싶었고, 지금도 공부하는 학원보다는 미술이나, 음악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의사, 변호사, 판사로 키우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 그녀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겠는가? “남편은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요.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우리아이들 공부 많이 시켜서 의사, 변호사가 돼야 한다는 그런 쪽이었는데 남편과 살다보니 남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결혼 15년 동안 의견차이도 생기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남편 말이 맞더라구요. 남편과는 다섯살 차이인데 인생을 더 살아 본 사람이라 그런가… 어떻게 보면 마을사업하는게 남편에게 하는 최초의 반항인 것 같아요.”

그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엄마가 바깥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철학을 가진 남편 덕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피아노학원을 하며 도서관 봉사활동 정도만 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방과후 코디네이터를 한 것이 바깥활동의 시작이 되었다. “남편은 아직도 집에 같이 있자고, 마을일 그만 접자고 해요. 그러면 저는 사실은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남편한테는 내가 꼭 있어야 할 사람처럼 애기를 해요.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 처럼요…” 처음에 반대가 심했다는 그녀의 남편은 지금은 내색은 안하지만 어느정도 협조적이 되었다고 한다. 미리 스케쥴이 있다고 얘기하면 아이들하고 같이 밥도 챙겨먹고 참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그녀가 본격적으로 마을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금천구 마을리더 아카데미 강좌를 듣게 되면서 부터이다. “처음 안내를 할 때는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뭣도 모르고 갔는데 가서는 깜짝 놀랐어요. 출석부에 제 이름 옆에만 주민이라고 써 있었죠.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다들 이력이 화려했어요. 저만 시흥3동에서 온 정성경입니다. 라고 소개를 했어요” 그랬던 그녀가 이사 온지 3년 만에 박미마을회관 운영위원회 총무, 마을지기, 행복학습소 메니져, 어울샘 운영위원 등 이름 옆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게 됐다. 

박미마을 뿐만 아니라 금천구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마을살이에 적응한 그녀의 비법이 궁금했다. “마을사업의 중심에 서서 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을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것이 마을일의 시작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을회관에서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여기 와서 생전 한해봤던 일은 다 해보는 것 같아요. 상추도 심고, 풀도 뽑으며 텃밭관리도 하고, 얼마 전에는 지하에 물이 셌었는데 아침마다 물도 닦아냈죠.” 마을회관 1층에 금천마실이 카페를 열 예정인데 갑작스레 도와줘야 할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에서 3년 만에 마을살이에 적응 한 비법을 알 수 있었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생각 되는 게, 마을사람이니까 그냥 할 수도 있지만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교육 때문에 사람이 확 바뀌는 건 아니지만 내가 몰랐던 것을 접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자문위원가’ 교육을 받고 있다는 그녀는 “교육을 받으면서 느끼는 게 ‘내가정말 우물 안 개구리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시에서 마을회관을 늘린다고 하는데 먼저 생긴 마을회관으로서 좀 더 잘 준비해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녀에게 마을이란 무엇일까? “삶의 터전이죠. 예전에는 마을을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되었고 저와 제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곳이 되었어요. 마을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우리아이들, 후손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것들이 마을사업을 통해 사람 사는 맛,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그녀의 바람은 마을회관이 금천구의 유명한 명소가 되는 것이다. “거기가면 정말 마음이 뜨뜻해지는 공간, 큰 길에서 올라오는 길이 꽤 멀어서 힘들지만 왔을 때는 너무 좋더라고 말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현숙 기자

kasizz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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