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  이경신(29)



금천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이 얼마 전 첫 축제를 가졌다. 초등학생들의 오케스트라, 동네 아주마들의 우크렐라, 아저씨들의 기타공연들로 북적한 동네잔치의 모습이었다. 축제는 주민들로 구성된 운영위원들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예술창작소를 직장으로 갖고 있는 단 한명의 역할이 크다. 바로 이경신 씨다.

이경신 씨는 스물아홉살이다. 소위 지역일, 동네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이상의 여성이다. 남성이 희귀하고 젊은 청춘은 그 존재만으로 더욱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시흥초교와 난곡중학교를 나온 경신 씨는 협진우시장과 독산1동 성산교회 주변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당시 우시장에 도축장이 있었고 소나 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 과거 코카콜라 자리 인근에 있었고 어릴 적에 독산동에 살다가 시흥동에 이사를 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중앙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8년간의 자취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집에 들어온 지 1년 정도 보낸 경신씨는 처음으로 집과 동네를 꼼꼼하게 돌아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와서 집을 제대로 들여다 본적이 없었다. 앞집 슈퍼아줌마랑 친해지고 동네 꼬맹이들과 사귀게 되고 길고양이도 돌봐주면서 1년정도 쉬었다.”

그러다 구청 앞 한내텃밭 분양을 신청하려다 보니 어울샘에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인연이 됐다. 


조금만 움직여도 하늘이 보여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경신씨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랜 시간의 흐름을 하늘을 보는 시야각에서도 느낀다고 한다. “예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하늘이 아주 넓게 볼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시야각안에 하늘이 얼마 안된다. 내가 자라는 것에 따른 변화를 제외하고는 이런 것이 제일 큰 변화”라고 이야기 했다.

마을의 청춘


지역에서 청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취업준비하고 직장다니느라 자신의 삶 공간에 나오기가 어렵다. 청년들이 더 많이 활동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경신씨는 “주도하는 주체가 없는 것 같다. 이 안에 없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그 친구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데 활용하고 쓰려고만 하는 것 같다. 젊은 사람은 쓰려고 하려면 쓰여지지 않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금천의 문화예술 인프라에 대한 질문에 “서울시가 문화예술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하는 어울샘이라는 마을예술창작소도 있고, 문화재단 시리즈의 예술공장도 위치해 있지만 활용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경신씨는 지적한다. 그리고 “지역과 서로 융합이 되면서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어우러져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고, 생긴지 얼마 안된 측면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혔다. 

 그러면서 금천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도 말한다. “‘금천은 후진 동네’라고 스스로 말한다면 당장 올 사람도 안 온다. 여기 사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재미있는 꺼리를 만들어 갈수 있는 초석을 다진다면 사람들은 알아서 올 것이다. 알아서 놀고 즐기면서 재미를 찾는 과정, 그런 속에 어울샘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을 즐기는 순환구조-어울샘


어울샘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에는 이런 구조가  우후죽순인 것 같지만 지금은 주민들도 마을예술창작소라는 개면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일하면 신경쓰지 못하는 것도 많은데 주민분들이 스스로 나서 주신다.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주민들이 알아서 어울샘을 소개주고 궁금한 것을 설명해준다. 동네 사랑방으로 이웃과 아이끼라 친구가 되는 과정들이 어울샘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여 예술계통의 대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어울샘은 최적의 학습공간이라고도 덧붙혔다. “예체능 입시도 공부학원과 다르지 않지만 고교1,2학년에 여기 저기 치여서 실습을 하기보다 성적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에서 어울샘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경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람이 있었어


금천에서 자라고 다시 이곳에서 문화예술을 가지고 주민들과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바람을 물었다. “항상 생각나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매일 오는 어린 친구들이 커서 시흥동에 살때를 돌아봤을 때 ‘이런 사람도 있었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이름을 기억하기보다 문득 한번 생각 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하지만 큰 대답이 돌아왔다.


청년, 예술, 마을의 연결시키가는 이경신씨, “놀고 먹는 것도 예술”이라며 주민들이 좀 더 편하게 예술이라는 것에 다가설 수 있도록 고민하는 활동 속에서 금천의 문화예술의 싹이 키워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성호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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