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 85

‘부수적 피해’는 미국이 사용하는 군사용어다. 전쟁 중 일어나는 ‘의도’하지 않은 피해로써, 주로 적군의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적군을 공격할 때 일어난 민간인 피해를 말한다. 모순적인 것은 미국이 진행한 또는 관련된 전쟁에서 언제나 민간인의 피해가 전쟁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쟁 중 사망하는 민간인의 수가 군인 전사자의 수를 넘기 일쑤이고, 1990년대 이 후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여성들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올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보라. 저들이 말하는 부차적인 것은 절대 부차적이지 않다. 부차적이어서도 안되고 부차적일 수도 없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피해”라는 말이 침략과 방어에 대한 전쟁의 책임을 묻어 버린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라는 생계말살 행위를 덮는 수사이듯 말이다. 물가인상을 물가 현실화라는 말이 그렇고, 담배 값 인상을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고 우기는 말들이 그렇다. 본질을 가리고 속이는 나쁜 말들이다. 거기에 “부수적”이라는 말이 붙으니 실수로 만들어진 사소한 일이 된다. 부차적 피해라는 말에는 불가피하다는 생각과 고의가 아니니 책임은 없다는 공포스런 무책임이 숨어있다. 제국주의 속성이다.

 최근에 군사 공격은 무인 비행기에 의한 공습인데 아군의 피해 없이 적군을 죽이는 이 전쟁 위험의 최소화는 전자 게임을 하듯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격을 가져왔다. 우리는 그 참상을 바로 엊그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서 봤다. CNN에 의하면 2014년 8월 6일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 지구의 사람들은 1800명을 넘었고 부상자가 10,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상자 대부분이 민간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집 안이나 학교에 있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최근 민간인 희생자가 65만 여 명에 이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이 18만 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가 얼마나 사악한 말인지 알 수 있다. 

 최근 전쟁의 양상은 강대국들이 연합해서 약한 나라들에게 속칭 '다구리'를 놓는 모양이다. 비슷한 힘의 대결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이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고 최근의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리비아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역 공격까지 군사력이 불균등이 심한 상황에서 강대국이 물량 공세를 펴는 양상이다.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내는 것에 공격에 동원된 무기와 공격방식의 문제가 존재한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은  ‘백린’탄을 쓰고 ‘집속탄(커다란 폭탄 속에 많은 수의 소형 폭발물이 장착돼 있어 소형폭발물이 분산 폭발하면서 살상반경을 넓힌 폭탄)’을 쓴다. 민간인이 밀집한 지역에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적군이 있다고 의심되는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이래서 부수적 피해에서 중심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임자는 단연코 강대국 제국주의 정치가들이다.  

이번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시 이라크와 시리아에 군사적 공격을 하겠다고 한다. 미국이 길렀던 반 이란 수니파 반군이 미국 기자를 참수하는 동영상이 자극한 공격이다. 미국 기자 두 명과 매일 매일 확인해야 했던 가자지구 어린아이들의 죽음 중 어느 것이 더 비참하고 패악한 짓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두 명의 기자의 죽음을 보며 안보로 인한 인권침해의 문제를 접고 인권보다 안보를 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미국의 기침은 약소국에겐 독감이 되지 않았던가?

부수적 피해라는 말의 문제는 사람의 생명 그것도 민간인의 생명을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는 문제다. 우리는 이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에 오염된 모습을 흔하게 만난다. 최근 남파 간첩이라 했다가 고문과 조작으로 무죄가 나오자 진짜로 간첩이라 고문과 조작 등 절차적인 문제는 사소한 문제라며 항소를 한 검찰, 세월호 유족의 아픔과 국가 경제 걱정을 대립시키고 그저 조금 큰 교통사고로 난 부차적인 피해로 나라를 흔든다는 발상들이 그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강자에 대한 용기 있는 풍자가 아니라 약자 중에 약자에 대한 이른바 일베라는 반인륜적 세력들이 벌이는 폭식 행사는 그 증상이 치유 불가능한 괴물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단 한 사람이 아파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세월호는 유병언의 못된 짓에 의해 발생된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사고가 난 후에 우리 사회가, 국가 체제가 책임져야 할 몫에서 사라진 그 무엇이 중심이다. 9.11 이후 미국은 국민적 단결을 했는데 한국은 엄한 대통령만 탓하며 분열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 유족에게 너무하다는 사람들은 9.11 테러 직후 40,000명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 경찰관 등 공무원이 441명이 희생됐음을 묻어 버린다. 이 숫자는 대부분을 구하고 혹시나 구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하며 소수의 시민을 구하다 희생된 숫자라고 한다. 이런 전제가 국가적 신뢰를 낳고 국민적 단결을 낳는다. 총책임자는 7시간 동안 실종되고 아이들의 구조소리에 단 한명도 응하지 않는 대한민국 경찰과 공무원들의 모습으로 신뢰와 단결을 원하는 것은 국민에게 진실을 묻고 노예가 되라는 주문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부수적, 부차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 주변부 바로 이런 호명(呼名)속에 세상의 미래와 세상의 중심이 있다. 진실이 이길 때 말이다.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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