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  2014. 10.13~10.26)

나는 91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소위 학력고사 세대이다. 국영수를 포함해 체력장까지 13과목을 모두 시험보고 총점에 따라 대학의 당락이 결정됐다.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단 한 곳. 그것도 시험 보기 전에 미리 지원한 후 시험 점수에 따라 당락이 나뉘는 방식이었다. 변화된 최근 입시와 비교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제도다. 

원서 마감 때가 되면 여러 장의 원서를 들고 온 가족이 여러 대학에 대기하다 경쟁률이 가장 낮은 학과에 막판 눈치 보기 접수가 성행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학력고사 두어달 전에 몸값 비싼 찍기 과외 선생을 만나면 막판 점수가 2-30점씩 오르는 일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때문에 당시 부모의 경쟁력이란 막판 찍기 과외 선생을 붙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가였다.

2014년 대학 입시 수시전형 원서접수가 일단락되었다. 최근의 대학입시는 예전의 학력고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있고 학교별로 내신, 수능, 논술, 면접, 학생부 비교과 영역 등을 다양하게 반영한다. 

크게는 학생부 교과 전형, 학생부 종합 전형, 논술전형, 특기자 전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세부적인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학교별로 반영하는 교과의 영역도 다르고 반영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국어나 수학 점수를 입시에 아예 반영하지 않는 학과들도 많다. 

마치 입시괴담처럼 ‘누구는 몇 등급으로 어느 대학에 갔다더라’하는 소문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수시전형은 내신이 중심임에도 일반고 1, 2등급 학생들은 떨어지고 특목고 4, 5등급 학생들은 붙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입시컨설팅이 유망 산업이 되었다. 막판 경쟁률을 가지고 눈치보기 지원을 하던 1991년 수준이 아니다. 아예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몇 군데 대학을 찍어놓고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는 물론 동아리 활동, 수상경력, 독서 이력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부모의 경쟁력은 단순한 경제력이 아니라 고도의 정보력이 되었다. 부모가 입시전형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빨리 알고 있을수록 아이가 좋은 대학에 입학할 확률은 높아진다.

교육열이 높다하는 지역에서는 입시 정보를 공유하는 학부모 모임도 성행하고 있다. 정보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부모들은 값비싼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영어 공부도 아니고, 수학 공부도 아니고, 논술 준비도 아니고 대학 입시 전형을 이해하고 준비하기 위해 적지 않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중3, 고1 쯤 상황을 파악하면 다행이다. 고 3이 돼서야 입시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손써볼 방법조차 없다. 그저 부족한 성적에 맞추어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빈 학생부를 들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최근에는 ‘차라리 예전 학력고사가 좋았다’는 자조 섞인 탄식마저 나온다. 그러나 아이들의 취향과 적성, 희망 전공과 관계없이 그저 학교 성적만을 가지고 한 줄로 세워 대학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입시의 다변화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다양한 방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애초의 취지에 맞게 단순한 교과 성적이 아니라 학생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입시 전형은 진로를 위해 성실하게 자기 준비를 해 온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보력이 많은 능력 있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교과 성적을 메꿔주는 대체 수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조희연 교육감 당선 이후 ‘일반고 살리기’가 화두다. 일반고를 살리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달라진 입시제도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특목고를 해체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일반고의 슬럼화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 달라진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일반고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유진 (지성의 숲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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