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대한민국은 

           지록위마(指鹿爲馬)세상


조고는 진시황을 시중하던 환관이다. 진시황이 여행 중 병사하자 당시의 승상 이사와 짜고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와 명장 몽염을 자결하게 만들고 막내아들 호해를 황제로 만든다. 조고는 승상 이사마저 참소로 죽이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세상을 망친다. 그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고 신하들 중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어느 날 호해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말이라 한다. 황제는 왜 말을 사슴이냐 묻지만 사슴이라 우겼고 이를 이상하게 생겨 뭇 신하들에게 황제가 저게 말이냐 물으니 대부분은 조고의 눈치를 보며 그렇다고 했고 일부반 아니라고 했다. 조고는 아니라고 한 사람들을 눈 여겨 두었다고 모두 숙청한다. 이것이 올해의 교수신문이 정한 올 해의 사자성어 지록위마의 유래다. 


사슴이 말로 바뀐 해가 2014년이다. 거짓과 농단과 불의한 권세만이 판을 친 해라는 말이다. 사슴을 말이라 우겨 관철시킨 조고의 권세는 십상시의 난을 가져왔다. 청와대 깊고 깊은 궁궐에서 범인들을 알 수 없는 음모와 술수가 폭로되었지만 진실은 사라지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한 사람만 꼭 집어 처벌한다. 그리고 아예 대통령이 나서서 사슴을 말이라 주장한다. 지록위마의 진정한 문제는 부정 불의한 권력의 농단이다. 윗사람을 조롱하고 충심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싹부터 자르는 무제한의 권력이다. 조고시절 문제는 황제가 어리석어 놀림을 당한 것인데 2014년 대한민국은 조고대신 황제가, 십상시 대신 대통령이 나서 민을 대상으로 지록위마 짓을 하고 있는 점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어 불의한 통치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세상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 그는 조고인간 아니면 환관들의 조롱인 호해인가?


2014년 지록위마의 최고봉은 당연 통합 진보당 해산이다. 국회의원의 두 시간짜리  강연을 빌미로 10만 당원의 나라에서 제 3당을 해산한 대단한 사건이다. 누구는 국회의원의 강연이 있기 전에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본명인 다까끼 마사오를 밝힌 것에 앙심을 품고 끝내 당 자체를 해산했다는 말도 들린다. 헌재는 1987년 유월 항쟁으로 만들어 진 국가 기구다. 그런데 민주화가 만든 기구가 민주주의를 뭉갰다. 통합 진보당의 해산은 1987년 이후 민주화 역사가 파산됐음을 보여 준다. 자주 민주 통일 대신에 의존과 독재와 분열의 세상이 되었다. 평화대신 전쟁을, 민족애 대신 증오를, 민주대신 유신을 원하며 민주화를 파산시킨 주역은 세 사람이다. 유신독재의 앞잽이자 17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김기춘 비서실장, 정당해산을 국무회의에 올린 황교안 법무장관, 정당해산 심판을 담당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그들이다. 모두가 독재시절 민주주의 요구를 고문과 폭력으로 범죄로 만들던 공안 검사 출신들이다. 산업화 민주화를 자랑하는 교역규모 세계 10권이 자랑이라는 대한민국의 속살은 여전히 독재를 위해 고문을 하고 조작으로 하고 또 수배 구속의 폭력을 행했던 독재정권들의 사냥개들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속셈을 처벌하는 수준의 법 상식을 가진 이들이 헌재판사들이라니 도대체 역사적 퇴행은 어디까지 뻗쳐 갈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2014년 지록위마의 버금가는 사례는 정리해고를 보는 대법관들의 행태다. 정리해고는 그 자체로 근대법을 부정하는 제도다. 잘못도 없이 사회적 사형선고인 해고를 노동자에게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도 없이 결과를 강제하고, 권리도 없이 의무만 강제한다. 그런데 그나마 그런 남용을 막기 위해 부과된 것인 정리해고는 절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고 그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법적 조항을 올해 대한민국 대법은 다 면제해 버렸다. 경영상의 위기가 없는 콜트콜텍 정리해고는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정리해고는 정당하다 했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경우 그 사유가 회계 조작 사기여도 정당하다 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본에게 쥐어줬다. 한마디로 미친놈들이 대법을 장악하고 있다. 


2014년 지록위마의 최악의 형태는 당연 세월 호다. 국가의 무능과 불의를 대신하여 유병언을 죽이고 해경을 해산한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능욕하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 진실을 호도하려는 정부여당의 모습은 사슴을 말로 바꾸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진실이 가려지고 희생자는 더욱 아파지고 거짓무리들만 뒤에서 잿빛 웃음을 지었다. 


오체투지를 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행진에 대한 연대는 즉각 구속시키지만 경제를 망친 재벌 총수는 여야가 총력으로 석방하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상장을 통해 수조 원을 챙겨가는 재벌들의 후손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지만 서민들은 시름달래는 담배 한 개비마다 수배의 세금을 태워야 한다. 진실을 말하면 진실을 규명하여 거짓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한 자들의 입을 막고 구속시킨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달을 가리킨 손가락의 손톱 밑 때만 규탄하는 권력과 그 권력의 디딤돌 사법부, 무엇보다 대한민국 천박화의 기수 종편들의 아귀소리가 만들어 낸 생지옥이 2014년 대한민국이다. 


애초 교수신문은 2014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의 ‘전미개오(轉迷開悟)’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는 미망에서 미망으로 더욱 나락에 빠진 아픈 한 해가 되었다. 2014년으로 아팠던 사람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정리해고 비정규직에 투쟁 중인 노동자, 모든 빈곤과 차별에 신음하는 이들이 환한 2015년을 만들기 위해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자. 우리는 매일 좌절하지만 또 매일 다시 시작하지 않았던가.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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