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켤 수 없어 화면만으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화면을 봐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배우의 입을 보며 열심히 말을 읽어내려다 결국 보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게 되면 이해도 어려운 거였나 봅니다.

장면 하나, 속마음 하나까지 친절하게 글로 설명하는 책을 보다 글 없는 책을 봐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친절한 글 대신 친절한 그림이 함께 있어서 상상과 이해를 도와주었던 그림책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낯선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훈 작가의 [양철곰]은 읽을 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마음이 충분히 읽.혀.졌.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양철곰]의 표지에는 낡은 집들 사이에 똑같이 낡은 커다란 양철곰이 앉아 있습니다. 무너질 것 같은 수많은 낡은 집들 속의 양철곰은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이 책은 환경에 관한, 사람의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발명목으로 작은 초록언덕에서 밀려난 양철곰은 사람들이 모두 황폐한 지구를 떠나도 혼자서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습니다. 

양철과 물은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의 몸이 망가져도 계속 끼얹습니다. 결국 몸이 무너져 내리면서 몸 안에 있던 도토리 씨앗들이 깨어나고 자라나 [나무곰]이 되고, 다시 지구는 초록을 되찾고, 떠났던 사람들도 동물들도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양철곰이 기다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동물들, 깨어날 씨앗들, 돌아올 인간들이었을까요? 그 기다림속에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나는 내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애써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해받지 못해도 눈길받지 못해도 위해본 적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해받지 못해 외롭기도 합니다. 친구사이에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묵묵히 나를 믿고 할 일을 해봐야 겠습니다. 양철곰이 ‘나무곰’이 될 때까지 하다보면 책에서처럼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동화읽는 어른모임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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