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아니면 89년에 나는 작은 사무실을 얻어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의 간사 일을 하고 있었다. 지역운동과 여성운동을 모두 아우르는 일이라 어려움도 많았다. ‘지탁연’의 이사님들을 모시는 자리에 이오덕 선생님이 오셨는데 마른 체구에 깐깐한 인상이었다. 일단 앉자마자 ‘지탁연’ 이라는 말이 잘못 되었다고 하셨다. 그것은 영어 약자 표기 방법이고 우리말 우리글에서는 줄여 부르되 그 뜻이 드러나야 한다며 ‘탁아연’ 으로 부르기를 권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했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참 강해서 그 일이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어린이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오덕 이라는 이름을 다시 보았고 나는 이 분을 내 스승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쓰신 책을 열심히 읽었고, 때로는 지나치게 철저한 그 태도에 조금 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선생님의 평론이나 주장은 내 마음에 와닿았다.

이번에 도서관 식구들 덕분에 읽은 새 책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선생님의 평소 모습처럼 깐깐한 주장만이 담겨있지 않았다. 인간 이오덕의 아픔과 정겨운 우정과 시퍼런 자기성찰이 들어 있어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나기를 여러 차례였다. 권정생선생님과 한 간고등어를 나누어 먹고 나란히 누워 나눈 인간적인 이야기들, 광주항쟁 당시 문인협회에서 시 낭송회를 연다고 개새끼 같은 연놈이라고 욕을 하기도 했으나 가장 가슴이 찡했던건 그 난리가 났는데도 나는 살겠다고 감자와 좁쌀을 샀으니 내가 인간인가 짐승인가 하고 스스로를 후려치는 그의 진솔함과 자기성찰이었다.

돌아가시기 이틀전까지도 일기를 쓰시고, 자신의 병과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삶이 자신에게 주었던 외로움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 일기를, 내가 이렇게 볼 자격이나 있는가 마음이 힘들어진다.

권정생, 이오덕 이 두 분과 친한 벗이라해서 또 알게된 전우익 선생님까지 조금 더 우리 곁에 있다 가셨으면 참 좋았겠다 싶지만 사라진 것을 그리워하고 기억할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오늘은 무척 고맙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 은행나무도서관 책이야기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