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년 은행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금천구는 옛 시흥군의 중심인 시흥읍(始興邑)을 포함한 부근 일대가 서울시에 포함된 행정권역이다. 면적으로는 과거 시흥군의 작은 일부이지만 그곳의 요지(要地)가 현재의 금천구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고장 상징의 상당수가 현재의 금천구 관내에 있는데 그 중에는 수령 1000년(기록상으로는 830년 여)으로 회자(膾炙)되는, 주민들이 마을의 신령수(神靈樹)로 삼고 있는 은행나무가 그것도 한 그루도 아니고 세 그루나 있다.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이 고장 역사의 산 증인이자 자랑이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가 고사(枯死) 직전에 있다.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다소 덜하지만 두 그루는 육안으로도 그 생육상태가 심각함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나무들이 이런 모습이 될 것은 지금부터 십 수 년 전부터 예견되었다. 나무들의 주변 환경이 아주 고약하게 번천 하였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뿌리는 이곳을 흐르는 하천을 복개하면서 식물로서의 생육의 제한을 만났고, 주변 건물들이 무분별하게 건립되면서 또한 뿌리의 상당수가 난도질을 당했다. 그에 더하여 나무들 사이로 도로가 형성되면서 밤낮으로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어대어 나무들은 숨 쉬기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전국에는 국가가 제도를 두어 관리하는 노거수(老巨樹), 노목(老木)들이 있으며 이곳의 은행나무도 그런 범주에서 서울시가 관리하고자 지정한 보호수이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운명이 된 것은 과연 이런 제도가 실효적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보호수란 글자 그대로 보호를 해야 할 나무이고 따라서 그에 부합하는 현실적인 조치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이곳 세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울시 지정 보호수가 된 것은 1968년 7월이다. 지금부터 47년, 근 반세기 전이다. 당시 이곳을 흐르는 개천은 복개되지 않은 채 맑은 물이 흘렀고 또 지금과 같이 은행나무의 뿌리를 잘라야 하는, 나무의 아주 가까이에 자리하는 건물들도 주변에 없었다. 그런 시기에 보호수로 지정해 놓고도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나무들이 대형버스가 다니는 도로의 한 가운데와 가장자리에 있게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은행나무 주변은 의미심장한 이 고장 역사적 사연이 있는 곳이다. 쇠락한 은행나무와 함께 도로 한가운데 처량하게 서있는 비석들이 말해주듯 조선왕조의 관아(官衙)가 있었고, 조선후기의 정조(正祖)가 부친(사도세자)의 능(陵)인 장릉 참배 도정의 숙박지인 시흥행궁도 있었다. 후기 조선의 현군(賢君)인 정조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임금이었기에 그의 행적에는 문화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많은 것은 주지하는 바로 수원시에 마련된 그의 행궁이 오늘날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이 그 설명이다. 그가 이곳에서도 머물면서 역사들을 엮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의미의 역사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건왕조에서는 생각할 수 없던 양민(良民)들의 정치적 욕구 분출, 즉 민주주의의 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이 지역에서 양민들에 의한 국가에 대한 저항, 곧 ‘시흥민란’이 있었고 그 연루자들의 재판장이 이 곳 관아에 개설된 것이 그것이다, 이런 현장들은 그런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문화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문화선진국들이 그들의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보존 관리 하는가를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다시 은행나무 이야기를 해보자. 서울시에 등록된 보호수는 216 그루(2014년 현재)이고 그 중 최고 수령은 830년으로 모두 은행나무이고 네(4) 그루가 있는데 그 중 세 그루가 이곳의 은행나무이다. (한 그루는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즉 이곳의 세 그루 은행나무는 서울시 보호수 중 최고령 수목으로 그것만으로도 이 나무들의 보존가치는 중분하다.

자료에 의하면, 보호수란, 번식이나 풍치 보존이나 학술 참고를 위해서 보호하는 나무로. 즉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중 보존 및 증식의 가치가 있는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堂山木)·정자목(亭子木)·호안목(護岸木)·기형목(畸型木)·풍치목(風致木) 등을 말한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러한 나무들을 제도를 두어 챙기는 것은 그것의 현실적 가치에 더하여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지가 이러한데도 서울시의 최고령 보호수인 이곳 은행나무가 퇴물처럼 방치되어 이제 운명을 다할 지경이니 이를 두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이런 중에 한 가닥 희망을 걸만한 소식을 접한다. 은행나무가 소재한 행정 동인 시흥5동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이곳 주민들로 조직된 문화단체인 (사)금천문화역사포럼이 협력하여 이 나무들의 보존 책을 마련하고자 여론 형성을 하고 있고, 이에 금천구청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상황으로 보아 이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에 기대를 두기가 어렵다. 그럴 만큼 나무들이 처한 환경이 열악하다. 다시 말하면 나무를 살리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기대를 포기할 수가 없다. 역사는 상징이 있음으로 비로소 생동감을 가져 사람들을 자극하여 문화를 창출하고, 그것들은 건설적 변화를 일궈내어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문화자산의 보존을 국가의 자부심으로 삼아 가꾸고 행기는 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고장의 역사의 산 증인이자 자랑인 은행나무를 살리자! 이 활동의 전개는 곧 우리가 문화국가의 구성원임을 스스로 자부하는 자랑스럽고 건강한 행동이다.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면 못할 일이 없다.(♣2015.07.23)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마을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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