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지방자치정부의 연륜이 쌓이면서 ‘주민을 앞세우는 제도나 정책’들이 경쟁하듯 하다. 일찍부터 행정 동 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라 불리고 ‘주민자치위원회’라는 기구가 운영되고, ‘주민감사청구제도’등이 보이더니 멏 년 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 마을공동체 사업의 한 유형인 ‘주민참여 주거재생 사업’에다 ‘찾아가는 주민 센터’까지 등장했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서울시는 이런 점이 아주 활발한 것 같다. 주민, 곧 국민이 주인인 것이 우리 헌법 정신이니 이러한 현상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이 “그들만의 잔치”라는 표현들도 회자(膾炙)되고 있어 그것들이 본래 취지하는 바의 달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주민’을 앞세우지만 아직은 소수의 주민들만 참여하는 제한적인 행태가 현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다수의 주민들은 이러한 제도나 정책을 아예 모르거나 알고는 있지만 그 구조나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덜하다. 주민을 앞세우면서도 아직은 친주민적인 시행이 되지 못하는 것이 ‘주민을 앞세우는 제도나 정책’의 현주소이다. 

지방정부들이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이른바 ‘주민 정책’을 표방하는 현재의 제도나 정책들이 잘못되었다거나 실패했다는 지적이 아니다. 현재의 모습들에 국가정책으로는 아직은 부족한 면도 보이고 또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지적함으로 그것이 본래 취지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접근은 ‘주민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국민 곧 주민이 국가 공동체의 주체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주민을 내세우는 제도나 정책’들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정체(政體)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으로 그 표지(標識)인 민주주의의 실현이 목적이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금천구는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도 앞선 기초 자치구 중의 하나이고 특히 2011년부터 시행한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전국의 자치구 중에서 앞서 시행한 자치구군(群)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구정(區政) 시현이라는 찬사를 붙여도 괜찮을 정도다. 비록 액수는 적지만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된 행태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을 금천구가 앞서 시행한 것이다. 이러한 찬사는, 그러나 지금은 좀 거북하다. 처음 시행과 그 운영은 평가할 만 했지만 그 후의 진행이 이 제도가 취지하는 바에 부합한다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천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평가와 연계하여 서울시의 제도를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금천구는 이 제도 도입 초기(2011년) 자체예산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였고, 비록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제도가 취지하는 바에 가까웠다. 그러나 2013년 서울시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산하 자치구들이 참여하면서 취지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2014년(2015년 예산)에 이르러서는 이 제도가 존치를 생각해야 할 경지에 이르렀다. 기초자치구간의 담합으로 서울시가 의도한 주민참여예산 시행취지가 훼손되었는가 하면 ‘주민 참여’ 의의도 실종되었다. 기초자치구의 공무원들이 예산확보를 위해 주민을 앞세운 예산획득 경쟁 장(場)이 되었기 때문이다. 금천구를 포함한 다른 자치구들이 이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접근을 하였고, 서울시가 빌미를 만든 것이다. 

2015년의 시행(2016 예산편성)에서는 서울시의 자각(自覺)으로 작년과 같은 기초자치단체간의 담합은 감소하였으나 주민을 앞세운 기초자치구 공무원들의 예산 획득전략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각종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의 선정가능성이 있는 자기 구의 숙원사업들을 주민을 앞세워 경쟁하듯 ‘예산획득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이런 현상, 즉 공무원이 주민과 연합(?)하여 예산획득을 위한 활동을 잘못이라 할 수만은 없다. 기왕에 마련된 제도인 만큼 가능한데로 상급 기관의 예산을 많이 가져와 예산부족을 채움으로 민원 해결 등 당면과제를 풀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합리적(合理的)이다 할 수는 없다. ‘주민참여 예산제도’가 취지하는 바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설치 목적은, 그 동안 권리 밖인 예산 편성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주민 눈높이에서 필요욕구를 충족케 함으로 시․구정(市․區政) 참여의의를 구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함이라 이해한다.  

문제는 또 있다. 이런 절차로 확보된 예산 내용이 그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번 예산(2016년)으로 금천구의 서울시 접수금액은 총 58건 2,158,925천원이고 부서검토에 의한 조정액은 1,980,050천원으로 금액으로 볼 때 서울시 25개 구 중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실적(?)이라 한다. 그러나 상당부분이 건설, 수리(修理), 물품구입과 같은 하드웨어분야로 이는 이 제도 설치취지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다. 건설 등 하드웨어는 가급적 기본예산을 주(主)로 하고 주민제안 예산은 주민생활과 밀접한, 소프트웨어 쪽이 많은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각종 정보를 가진 자치구 공무원이 참여를 주도한데 따른 결과이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예산 비전문가적 시각일지 모르지만 이 제도의 설치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의 예산정책 수립은 국가경영이라는 큰 틀 아래서 각 분야를 균형 있게 조화하고 이러한 구도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광역자치단체), 그리고 지방정부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 운영 구조와 방향이 마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이러한 조화를 수행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일 것이다. 차제에 서울시는 물론 금천구를 포함한 다른 자치구들은 그간에 보인 불합리를 반복하지 않기를 주문한다.

문제가 있지만 주민참여예산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제도가 가지는 긍정성을 살려 개선을 통하여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대로(大路)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주민, 곧 국민들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형(原型)이고, 그것을 제도로 마련하고 바르게 시행하는 국가가 곧 선진국의 모습이다.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포함한 ‘주민을 앞세우는 정책’들을 더욱 발전시켜 기왕에 마련된 관련 정책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그래서 이 땅에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주의가 시현(示現)되기를 기대한다.(♣2015.09.08) 

장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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