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등 반려동물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이 가끔 언론 매체에 보이더니 드디어 온 국민이 경악할 사건이 터졌다.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돌보던 주부가 누군가 던진 벽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고의에 의한 사건이라고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정황을 살 필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비정한 우리사회 이웃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난다.


내가 싫은 것을 남이 하면 화가 나는 것은 인간들의 보편적 모습이다. 이런 일들로 이웃 간의 갈등이 있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어 폭력으로까지 연결되는 경우를 보도 등을 통해서 접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 요즘의 세태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그래서 갈등이 일고 다툼으로 발전되는, 바야흐로 다양성으로 인한 갈등의 사회가 오늘의 우리 사회이다.


사람들 간에 갈등이 이는 것은 서로 다름(異)을 인정하지 않음이 중요한 이유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이도 동의해 주기를 바라고 그러지 않을 때 반감을 갖고 그것을 행동함으로 갈등이 일고 다툼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캣맘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즉, 나는 길고양이가 싫은데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는가 하면 집까지 만들어 주는 데 화가 나고 그 화를 행동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을 죽이고자 돌을 던진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길고양이를 챙겨주던 한 평범한 주부가 그로 인해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죽게 된 이번 사건을 그러나 이런 논리에서 조명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유사한 사태 재발 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유(思惟)하는 인간에게 싫고 좋아함의 공식을 두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좋다고 항상 좋아하지 않고 싫다고 영원히 싫어하지도 않는다. 변화무쌍한 감정을 소유한 동물이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반려(伴侶)동물이라는 단어가 회자되더니 이제는 어린아이들까지도 그 말뜻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생활에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이 어느덧 함께 사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삶에 이러한 동물들이 반려자가 될 수 있음은 인류의 오랜 역사이고 따라서 그것을 따지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다. 그러함에도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번 ‘캣맘 사건’을 제대로 살피는 자세이다.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개나 고양이 등 이른바 반려동물을 좋아하여 같은 취향의 사람들에게 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값비싼 장식으로 동물을 치장하거나 사람들이 보는데도 지나치다 할 정도의 애정표현을 하는 등의 행위가 그런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평소 반려동물에 대한 반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저항감을 갖게 하는 이유가 되는가하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오감을 갖게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유난히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서워서 그러거나 그들이 내는 소리들이 싫어서 그런 경우 또는 본능적으로 동물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캣맘’과 같은 사람은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심한 경우에는 혐오(嫌惡) 대상이 된다. 더욱이 싫어하는 모습들의 반복, 예를 들어 듣기 싫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밤마다 듣게 되면 그런 환경을 만든 자에게는 혐오를 넘어 증오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그런 상황에서 조명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장에서의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이다. 그가 사회 통념상 비난받을 행위를 하지 않았는가 하면 어떤 면에서는 선의적인 행동을 했는데도 그것이 이유가 되어 공격을 받았다. 다시 말하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겪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적 결과, 즉 사람을 죽게 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이런 사태는 재발될 수 있는 점이다. 그럴 만큼 우리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그 수위도 상승하고 있다. 더욱이 세상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그로써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게 일어나고 있다. 반려동물은 그런 현상의 원인이 될 개연성을 풍부히 가진다.


주변에 반려동물을 가지는 가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인간의 행복추구 욕구라는 명제로 이는 인간 삶의 질의 한 우월적 표지인양 오해되기기 조차 한다. 이에 편승하여 동물애호 인식도 상승하고 있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소요되고 있다. 문명화 과정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를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 그 곳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위험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층 간의 간격을 사실화함으로 일수 있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반려동물에 포함하기는 좀 그렇지만 길고양이도 이런 범주에 들게 됨으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캣맘 사건’은 좀 특이하지만 그런 사회상의 한 한 단면이다, 필자의 집 근처에도 길고양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가끔이지만 발정기에 이른 길고양이들의 음산한 울음소리로 밤잠을 설칠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린 손녀는 길고양이가 꿈에 보여 무섭다며 공포에 질린 모습조차 보인다.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물애호를 앞세워 이해만 요구하는 것은 안일한 발상이다.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캣맘 사건’은 반면교사다  (♣2015.10.14)1)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하

고 있으며 다양한 마을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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