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노동권을 보장한다. 노동권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음을 말한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는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아니라는 엄숙한 선언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일자리가 없음은 국가와 사회가 나에 대한 의무와 약속을 져 버리고 있음을 말한다.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민의 4대 권리로부터 나온다. 나라가 먼저 애민을 할 때 사람들은 나라와 공동체에 대한 자긍으로 애국을 한다. 사치와 향락과 도박이 엉클어진 스포츠에 열광하고 평화와 통일 대신 분열과 증오를 애국으로 착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퇴행시키는 자포자기다. 


한국에서 민주와 인권이 신장되고 함께 살자는 희망이 넘친 것은 87년 6월 항쟁과 이어진 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형성된 힘이다. 이 힘이 다시 권력과 돈에게 잡혀 먹고 만 것은 인간에 대한 가장 잔인한 테러인 신자유주의를 강제한 IMF 환란 이다. 그로인해 한국은 실질적 완전고용시대(직장 이전이 임금 인상의 계기가 되고, 장기근속에 금반지 상을 주던 시대)가 끝장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고실업 이라는 헬 조선이 열렸다. 인간이 그저 도구이자 수단이고, 타인이 그저 승자독식의 적인 시대가 열렸다. 오직 나만이라도 살자는 스펙의 시대가 열렸다. 스펙이 늘수록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빠져드는 수렁임을 알지 못했다. 백만 중에 하나 있는, 그것도 미친 언론들의 분장된 성공신화에 운명을 맞기며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헬 조선을 만들었다. 


민주공화국에서 시민(市民)은 신민(臣民)임을 거부해야 한다. 시민은 정치의 주체다. 비판과 감시의 중심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은 언제나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하인 머슴을 원한다. 거지가 공주 걱정하듯 가난한 자, 실업자가 돈의 정치를 하고 오욕의 역사를 만드는 굴종의 정치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다. 신민은 노예일 뿐 민주공화국의 성원이 아니다. 극단의 이기주의와 극단의 배타주의가 만든 것이 지금 우리가 만나는 헬 조선을 실체다. 3포(연애, 결혼, 출산)가 8포(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 자아포기)가 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져도 평화와 진보를 종북으로 모는 정신병에 오염된 세상이 헬 조선이다. 


실업청년들이여,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든 지겨운 일자리는 소외된 노동이라 부른다. 노동의 다른 말이 활동이다. 먹고 살기 위한 활동만 노동이 아니다. 보람 있게 사는 일상, 더 아름답게 관계를 만드는 연애까지 모두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모든 활동이 노동이다. 함께 구상하고 함께 만들며 그것을 함께 누리는 모든 과정이 노동이다. 그래서 진정한 노동은 놀이와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 즐거운 보람 찬 삶 전체를 이윤의 굴레에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두렵고 괴로운 진짜 이유다. 가끔 그 고통이 솟구쳐 가늠할 수 없는 분노가 된다. 원인 제공자 대신 사회적 약자나 무차별 대중에게 심화가 폭발한다. 인간을 퇴화시키는 진정한 악의 뿌리는 돈 중심의 사회 구조다.


자본주의에서 실업자는 사회적 생명을 거세당한 존재다. 아프다. 하지만 통증은 가장 지혜로운 경고라고 하지 않던가. 이 아픔을 새로운 계기로 만들기 위한 분투가 필요하다. 화를 복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권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남과 남의 가족을 외면하는 죽음의 일자리를 잃은 김에, 그런 일자리 조차 얻지 못하는 김에, 아예 거부하자. 영혼도 존엄도 없는 비정규직 좀비 노동, 살아남기 위해 남에게 이리 늑대가 되어야 하는 정규직이라는 사탄의 노동을 타파하자. 신나고 신성한 노동을 되찾는 일을 시작하자. 나가 아니라 우리를, 개별 가족이 아니라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노동, 거대한 노동을 시작하자. 


눈을 들어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자. 재벌들의 곳간엔 수백조의 재산이 쌓여도, 저들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부모와 자식 간 싸움만 부추긴다. 좋은 일자리 대신에 청년 일자리 펀드를 만든다니, 거기에 월급을 적선한다는 대통령은 우리의 고통의 해결자가 아니다, 우리의 절망을 조롱하고 능욕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프면 아플수록 그것은 세상이 썩고 퇴행했다는 말이다. 생각하라. 더 가지고 다 가지려, 특권과 반칙과 세습과 부패를 일삼는 돈과 권력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저항하는 자가 있어야 변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피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지금의 고통을 바꾼다. 만약 저항하지 않고 준법 질서만 지키는 사람들이었다면 인간은 아직도 노예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란 말을 잊지 말자. 


나를 바꾸는 노동 일터를 바꾸는 노동과 함께, 사람이 할 가장 힘 찬 노동은 세상을 바꾸는 노동이다. 지금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내 몸과 마음을 가둔 골방을 박차고 거리로 나서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다시 만들고 역사를 바로 세우며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실업자에게 보편적으로 실업수당을 지급하라고 데모를 하는 일이다. 실업자기에 더더욱 절실하고 또 가능한 일이며 역사와 세상의 주인임을 확인한 신성한 노동,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서로 함께 안전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우리시대 독립군이 되는 일이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의 가속화 되고 있다. 굶어 죽거나 아니면 노예가 되라고 한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머슴으로 살라는 악법을 만들면서 개혁이라 한다. 그 사이 실업자게에도 세금을 걷는 간접세 서민세는 늘고, 부자들의 감세는 커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과태료니 벌금이니 1조 단위로 물고 있다. 이 파렴치한 세상을 멈추게 하지 않는 한, 사람 사는 세상은 없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공격하는, 마름들이 더 흉폭한 야만의 세상이 커진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가 거리로 나와 세상을 바꿀 필요는 절박해 졌다. 청년실업자들이여 저항하라. 저항하는 당신들의 시대의 주인이다.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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