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퇴행이 거침없다. 부정으로 권력의 칼자루를 쥔 무리가 미친 망나니처럼 칼질을 해 댄다. 저들이 이기면 지옥이고 저들이 망해도 대한민국을 진흙수렁이다. 

하지만 저들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다. 외려 치밀하다. 매국과 독재의 유전자가 빨간 정당을 만들기도 한다.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국민행복을 외친다. 그러니 민주화 다 됐다는 이들, 저들이 집권해도 민주주의 퇴행이 없다던 이들, 모든 움직임을 체제 안에서 가능하다는 이들, 이들의 유약함과, 자본주의가 만든 노년 복지의  황무지와 파탄과 사회적 소외를 마치 민주화의 후과로 보는 늙은 세대의 무지와 광기를 숙주 삼아 1970년 박정희 시대를 만들겠다는 집념이 광적이다. 

결과, 평화라는 상식은 전쟁으로 퇴행했고, 통일이라는 염원은 증오와 분열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니 헬 조선이다.


저들의 광란이 치밀한 것은 누군가 제대로 히틀러의 집권 과정과 지배 과정을 배워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토대부터 상부구조까지 그들은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곰팡이가 햇빛 싫어하듯 기피하면서 치밀하게 유신의 복제를 준비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그들이 완성하는 매국 수구 반동의 세상을 목격하고 있다. 재앙을 개혁이라 부르는 무지의 세상, 역사 왜곡을 역사바로세우기라고 우기는 맹목의 세상을 보도 있다. 아름다운 새마을 정신에 빛나는 한국적 민주주의 유신체제가 복제된 세상 말이다. 참으로 성실하게 도둑, 강도 사기를 쳐서 보람차다는 암흑 세상 말이다.


유신체제의 복제를 완성하기 위해 저들은 두 가지로 방책을 쓰고 있다. 하나는 토대 차원에서 유신화다. 개혁이라고 쓰고 재앙이라고 읽어야 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의 추구가 그것이다. 본심은 우리 사회 근간으로부터 저항의 핵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다. 그 중심엔 탈도 말도 많지만 조직된 노동자들, 즉 민주노조가 있다. 민주노조의 힘을 거세하기 위해, 회사의 주구가 되는 친일파 같은 노조만 남겨 놓기 위해 그들은 단체협약을 죽이고 사장이 맘대로 하는 취업규칙을 강요한다. 노동권과 노동3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짜노동을 강요하고 세대 간의 이간질을 하는 패륜적인 임금피크제가 밀어붙인다. 근로기준법을 송두리째 도려내는 일반해고제를 강제한다. 헌법이 사라진 곳에서 노예의 노동을 감수하지 않으면 죽어 버리라는 것인데, 이 패악이 본심은 민주주의 마지막 힘을 제거하고야 말겠다는 유신표 욕망이다. 


두 번째는 국민을 노예의식으로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부일 매국 친미 군사독재, 자본의 살인적 독점을 부정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낙인하려는 유신표 욕망이다. 영구집권을 정신적 차원에서 보장하는 길이자, 당장 증오를 통한 정치적 승리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조선의 말과 역사를 씨 말려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영구히 제거하려는 일제시대 식민지 지배정책의 부활이다. 이로서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야끼의 저주담긴 예언이 실현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부일 매국의 적자, 후손들이 만드는 남한의 역사는 일제가 다시 역사의 지배자 현실의 권력자가 되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만큼 미친 세상이라 정말 분하다. 

이들에게 국민은 말 그대로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이들에게 국민은 주인으로 받들고 봉사하는 대상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하고 지배하는 대상이다. 그러니 먹고 사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못하는 가축의 모습으로 국민을 만들기 위해 노동재앙을 밀어붙인다. 처음부터 식민 노예 정신을 주입시켜 다른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노예적 국민을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는 퇴행의 완전체를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신분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하지만 그 해방은 임금노동이라는 경제적 굴레로의 대체였다. 반면에 신분 굴레의 해방은 인간 개성의 해방, 이성의 해방, 정치적 주체로서 민(民)의 각성이었다. 이런 모순적 처지를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사슬에 얽매여 있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요약한 말이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라는 말이다. 신민과 시민의 차이는 통치와 정치, 복종과 권리라는 이름으로 대별된다. 시민은 사회와 관련한 교양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 즉 자신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인권을 중시하고 인권을 보장 받고 실현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시민은 인민과 같은 말이다. 사회계약의 주체로 ‘무엇에 구속되지 않은 원래의 사람(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다. 반면에 신민(臣民)은 군주국에서 관리와 백성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군주국의 주권은 군주에게 있으므로, 신민은 주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저들은 지금 우리에게 당신은 시민인가 신민인가를 묻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성원인가 파쇼권력의 노예가 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역사왜곡 수단인 교과서 국정화에 많은 이들이 즉각 반대 행동을 한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노동재앙을 막아내는 길이다. 역사적 왜곡을 막는 것이 금강산 구경이라면 노동재앙을 막는 것은 식후경의 식(食)이다. 다행히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발휘하자는 제안을 받고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는 “을들의 국민투표 제안”이 그것이다. 투표 순간에만 주인이고 그 외에는 머슴인 잘못된 체제에서 국민이 신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는 길은 쉼 없이 돈과 권력의 반칙을 감시 수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으로 주권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당신은 시민인가 신민인가? ‘을들의 국민투표’를 통해 답을 해 보자. 무지하고 포악한 정권의 역사적 심판의 엔진을 달아보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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