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을 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순종이란 단어가 조선시대 여자나 쓸 것 같은 말이기도 했고, 밭일이든 부엌일이든 금방 금방 척척 남자들처럼 시원하게 하시는 어머님과 순종이란 단어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아버님께 순종을 하면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 그 뒤로 시어머니를 유심히 지켜보는데, 어머님은 정말 순종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거나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아버님이 화라도 내시면 비위를 거스를까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셨다. 내가 보기에 참 답답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조용히 사시는가 싶었는데 요사이 몇 년 어머님이 가끔 화가 나서 못 살겠다는 푸념을 하신다. 그 때마다 며느리, 딸이 모여 어머님에게 남편에게 사랑 받는 법이며, 편하게 사는 비결, 싸움의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나서는데, 어느 것 하나 별 효력이 없었는지 요즘 들어 어머님이 부쩍 힘들다는 말씀을 하신다. 결국 아들, 딸들이 모여 두 분을 따로 계시게 하자는 가족회의를 할 지경까지 갔지만 그때마다 어머님은 그러면 너희들이 힘들어서 안 된다며 자식들의 제안을 거절하셨다. 그런 어머님께 감사하면서도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하면 어머님이 좀 편하게 사실까 고민을 했는데,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으니 자연스레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공 작은 나무의 할머니 보니 비처럼 지혜로운 어머님과 주인공 할아버지 웨일즈처럼 고집스럽고 꽉 막힌 아버님, 두 분의 조합이 그들과 너무나 닮았는데, 두 분도 그들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추석 연휴, 시댁에 갔더니 역시나 아버님에 대한 어머님의 푸념이 한 차례 이어졌다. 그리고 어머님 보다는 좀 낫게 사는 두 며느리의 마음 편해지기 비법 전수 시간이 돌아왔다. 둘째 며느리인 동서는 이제 아버님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씀 하시고, 놀러도 다니시고, 하고 싶은 일을 좀 해보시라고 한다. 만날 하는 뻔한 조언이고, 뻔히 되지 않을 일들인 줄 모두 안다. 드디어 내 차례다. 

  “어머님, 제가 드디어 사랑받고 사는 비결을 찾았어요.”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를 치니 어머님도 솔깃해 하신다. 

  “어머님, 그러지 말고 그냥 아버님을 이해하세요.”

 그러자 어머님이 발끈하신다.

  “여태 내가 이해했으니께 지금까지 살았지, 이해 못했으면 이렇게 살겄어? 내가 그냥 죽겄어! 징글 징글 햐 ~ ”  

 “어머님, 그런 이해 말구요. 왜 화를 내시는지 물어 보고, 이야기를 들어 주시라고요. 피하지 마시구요. 이 비결은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가르쳐 준 건데 제가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열심히 읽어서 알게 된 거예요. 이해를 해야 사랑할 수 있는 거래요. 그냥 혼자 참는 이해 말구요. 아버님이 화를 내시면 그냥 얼마나 몸이 괴로우면 저렇게 불퉁거릴까 걱정해 주시라고요. 어머님 만날 속으로 ‘당신만 아퍼, 나는 더 아퍼!’하시잖아요. 그러지  마시구요. 마음으로 진짜 이해하려고 해 보세요.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이해해주려고 하면 아버님도 어머님 힘든 것 이해하시고 잘 해 주신다니까요.”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어머님은 그냥 내 이야기를 흘려버리는 눈치다. 책을 읽고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에 백 배 공감을 하고, 자신을 반성해서 남편과의 오랜 불화와 갈등을 이겨낸 며느리가 생생한 경험담을 전수하건만 이번엔 시어머니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고 하면 안 돼 …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두지 …그러니 곰한테 너구리한테 뺏기지 …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26p)

 

  책을 읽는 내내 노부부의 사는 모습과 손자에 대한 가르침을 보며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철학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자연도 사람처럼 봄이면 출산의 진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체로키 인디언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 속에서 지혜를 얻고 그들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자연에 감동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의 삶만큼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을 어느 문학작품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역시 이 소설에서 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만 보아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속삼임을 들으며 잠드는 작은 나무의 모습과 서로 사랑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 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ou"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69p)


  어머님과 아버님도 이들처럼 서로 kin하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이 갈수록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톨스토이가 말했던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 보다 훨씬 더 쉽고 상호작용이 확실한 사랑을 전수하건만 어머님은 이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어머님, 아까 그 책에서 그러는데 개든 사람이든 자기가 아무데도 쓸모없다고 느끼는 건 아주 안 좋대요. 이런 저런 모든 일 혼자 하지 마시고 아버님 하실 수 있는 일은 좀 맡기세요.”

하고 덧붙이려다 그냥 입을 닫았다. 대신 아버님께 기차역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 속에서 사시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체로키 인디언들과 달리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분들에게 인디언의 지혜가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그저 용돈이 든 봉투를 드리면 저절로 두 분 모두 편안해지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금방 기차역이다. 열차를 타러 승강장 출구로 나서는데 아버님이 5만원 지폐 한 장을 불쑥 내미신다.    

 “차비햐 ~ . 쪼금 밖에 못 줘.”

 “아휴, 됐어요. 요즘 며느리 돈 잘 벌어요. 다음에 제가 용돈 더 드릴게요.”

돈이 많네 적네 받네 못 받네 실랑이를 하고 돌아서는데 왈칵 눈물이 나려했다. 맞다. 몸이 사는 데 필요한 마음을 꾸리느라 나도 아버님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먹고 사는 핑계를 대며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다.  

‘아버님, I kin ye, 제가 아버님을 kin할게요. 어머님 힘드시니 화 좀 내지 마세요.’


사람들은 모두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 몸이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과 영혼의 마음.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해지면 영혼의 마음은 밤톨보다 작아진다. … (중략)…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죽지만 영혼의 마음은 그대로 남는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꾸는 비결은 오직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본문 104쪽) 



                                                               

      2015.10-1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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