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봄을 봄답게 만들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 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참으로 자주 만나는 말이자,  탄식이고 절망이고 원망이다. 다된 밥에 재 뿌리고 남 잘되는 꼴은 물론 제 민족 평화롭게 통일하자는 것도 배가 아픈 종자들이 많고도 많으니 봄은 매년 오건만 아닌 봄만 온 것이 한반도의 최근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되는 것도 안 되고, 된다 된다 하면 안 되는 것도 된다.”는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 매년 되살리며 살 수 밖에. 방북 후 돌아오면서 구속만 남은 상태에서 기자가 후회하지 않는가를 물었을 때 목사님은 ‘후회는 일 자체의 부정인데 통일로 가는 길에 후회는 없다. 반성을 할 뿐이다. 더 잘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더 찾는 성찰 말이다.’라고 하셨다. 이후 문 목사는 “통일은 됐어.”를 외치고 사셨는데 그 완성형에 담긴 간절함이 아직도 절절하게 심장을 울린다. 

그리고 2018년 봄이 왔다. 증오와 혐오대립의 영구 동토가 될 듯한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봄바람에 봄나물들이 겨우내 언 얼굴을 편다. 한꺼번에 돋는 초록의 혁명에 어떤 드센 겨울도 견딜 수 없는 자연이지만, 사람의 일만 항상 자연의 법칙을 뒤틀었다. 평화와 통일은 종북 몰이의 먹이가 되고, 증오와 전쟁은 애국이 되었다. 항복을 먼저 하지 않으면 대화마저도 안 된다는 불통의 칼바람만 ‘전략적 인내’니 ‘적극적 관여와 압박’이니 하는 이름으로 한반도를 덮었다. 이랬던 한반도의 겨울이 드디어 깨지고 있다.  


오는 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장 큰 변화는 결국 북한이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아주 전략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재구축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제자리인 역류에서 노 젓기 식 6자회담이나, 미국의 변덕과 중국의 오만이 만든 수동적 상황을 때려 치고 판 자체를 바꿨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 먼저 산 다음에 상대를 공격하는)' 전략이다. 아생(我生)은 북의 핵 무력의 완성이다. 이후 우리민족끼리라는 본래의 힘을 극대화하여 기존 정세의 흐름을 갈라 치며 살타(殺他)가 아니라 상생(相生)의 길을 개척했다. 6자회담으로 상징되는 대국적 꿈에 빠져 역사적 동지를 외면하는 기존의 중국 통로가 아니라, 우리민족끼리라는 남한 통로로 평화의 길을 내고 있다. 이것이 김정일과도 다른 김정은 식 변화의 요체인데 통미봉남이라는 있지도 않는 유령과 한미동맹이라는 악령에 귀신 들린 남한사회에 대한 능동적 대처이기도 하다. ‘남한을 통한 미국 다루기’의 청사진은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그린 그림이다. 

이것은 남한에게는 한반도 운명의 운전대를 잡은 역할의 힘을 실어 주고, 미국에게는 남한의 어법으로 트럼프의 심기를 마사지하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과정은 분단을 이권의 숙주로 삼아 부귀 권세를 누리는 분단 세력들에게 혼란과 자기 부정 그리고 자기 파괴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미국과의 교섭의 난관을 남과 함께 분담하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분단 적폐들을 타격할 수 있는 일거다득의 묘수다. 이런 북의 전략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는 또 다른 결정적 힘이 있다. 2017년을 가른 ‘촛불 광장’의 힘이다. 남한 민중의 힘이 분단 반동의 쳐 둔 정치적 절망을 때려 부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의 핵무력이 보이는 파도라면 한반도의 봄을 부르면서 미투 운동을 통해 차별과 혐오의 근저를 휘젓는 촛불광장의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결정하는 해류와 같다. 


봄바람의 현실적 발아(發芽)는 물론 평창 올림픽이다. 올림픽의 대의명분이 이렇게 훌륭하게 작동되어 위선(僞善)을 진선(眞善)으로 만든 경우가 있을까? 남북 특사 방문을 통해 이렇게 전쟁을 평화로 돌리는 전격(電擊)이 이전에 있었던가? 전격적인 변화의 꽃이 남북정상회담이라면 그 열매는 평화협정을 만들어 낼 북미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이 와중에서 북이 남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가진 현실과 명분의 충돌에 대한 완화, 남한 내부의 통미봉남과 위장평화 적화통일의 두려움, 분단을 지배의 토대로 삼는 이들에 대한 남한 내부적인 견제까지 어느 것 하나 빼 놓지 못하는 명수를 던지는 김정은은 애송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능력과 감각을 갖춘 외교의 명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로 한반도 정세를 푼다면 우리 안의 비극과 상처를 돌려 올림픽의 대의명분을 제대로 살린 것처럼 세계 체제적 문제를 한반도로부터 푸는 쾌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흥분만큼 내부적 냉철함이 필요하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기억과 책임을 다시 점거하는 일이다. 우리는 일본의 군국주의 만행과 이로부터 받은 민중들의 고통을 두고 역사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명예롭기 위해서 일본군 성노예를 조성하고 그것으로 부귀(富貴)를 챙긴 친일의 무리와 그 후예들, 미군기지와 위안부 문제, 무엇보다 월남 참전을 통한 남한 군사독재정권의 만행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과 반성을 해 내는 일이다. 남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에 들보를 들어내야 한다. ‘일본 장교 출신들에 의한 주도된 한국군’의 무도함은 유신 독재와 특히 광주에서 시민에 대한 학살을 통해 확인했다. ‘제 국민에게도 저리 흉악한데 하물며 외국에서 고삐도 없이 저질렀을’ 만행을 생각하면 베트남 민중들의 고난에 식은땀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절박하게 할 일은 한반도의 봄을 지키기 위해 한국 군부의 사대 망국성과 흉포함을 그대로 정치화한 세력에 대한 응징을 하는 일이다. 최근에 태극기에 성조기 그리고 이제는 일장기 까지 내 건 역사적 흉물들, 히틀러 나치의 폭력보다 더 잔인한 사적이고 증오적 폭력을 자랑하는 극우반동의 기독교를 참칭한 세력이나 공개적으로 반동을 체현한 자유한국당류의 정치에 대한 단호히 거부하자. 독재와 그 후예에 대한 역사적 불관용만이 불안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진정한 안보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트럼프의 북한 방문, 한반도에 거대한 환절기가 시작했다. 안양천 길에서 막 파릇한 새싹위에 하얗게 덮인 서리를 보았다. 봄이 완숙되기 전에 꽃샘추위도 창궐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우리의 평화 통일을 향한 봄을 봄으로 느끼지 못하는 한탄의 한반도를 이제 마감하자.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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