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학대(虐待)



<출처 : MBC 뉴스>


근로계약서를 쓸 때 자본은 갑이고 노동자는 을이다. 원청과 하청이 계약을 할 때 원청이 갑이고 하청이 을이다. 전세계약서를 써도 주인이 갑이고 세사는 우리는 을이다. 갑을관계는 책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권력적 위계질서의 표현이다. 거기에 ‘질’이 붙으니 갑질이란 ‘힘 센 자가 약자에게 퍼붓는 폭력과 범죄의 학대’ 행위다. 


갑질은 오래된 문제다. 최근에 다시 대두된 것은 병원 안에서 이른바 ‘태움’이라는 비정상적인 관행에 목숨을 잃은 간호사와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막무가내 패악질이 폭로되면서다. ‘태움’현상은 신참 간호사에게 기합을 주듯 빠르게 일을 습득시킨다는 명분으로 여러 이유로 손이 둔하거나 일을 쉽게 배우지 못하는 신참을 괴롭혀 쫓아내는 폭력이다. 갑질에 대한 자각이 없는 시기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당연시하다가 사고가 생기면 ‘못된 고참이나 못난 신참’의 개인적인 문제로 돌려졌다. 하지만 세 살배기도 안다. 이런 참사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병원자본이 ‘최소의 인원으로 최장의 시간의 일을 통해 최대의 이윤을 모색’하는 과정의 필연인 것을. 인력 확충이라는 정상적이 통로를 통해 환자와 노동자의 안전을 높이는 대신 마른 수건 쥐어짠 돈 중심의 경영이 만든 참극이다. 이 과정이 묵과 되는 것은 병원은 비용 줄이고 노동자들끼리 화합단결을 파괴하니 꿩 먹고 알 먹고 이기 때문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가 광고제작을 맡은 업체와의 회의에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화를 내며 유리병을 던지고 물을 뿌렸다. 태움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면 조현민의 패악은 원하청 사이에서 벌어진 갑질이다. 이후 대한항공 회항의 땅콩언니와 그 엄마까지 갑질 패악이 폭로되면서 일파만파의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예견된 일이라며 조씨 일가의 전횡적 지배가 관철되는 회사의 구조와 관행, 자정을 위해 필요한 노동조합 활동 중 파업권을 ‘필수유지업무’라는 이유로 원천 봉쇄한 법의 허점이 만든 비극이라 지적한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한화그룹 김승연의 보복폭행, SK그룹 최철원의 맷값 폭행과 같은 재벌들의 어이없는 반사회적 범죄를 환기하면서 ‘재벌의 제왕적 족벌경영체제’가 문제라 지적한다.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한 불법 경영승계,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끝없는 불법 경영과 비자금 조성, 뇌물공여로 불법경영을 보호해 온 정경유착이 본질이고 실체’라는 것이다. 대한항공 뒤에 숨어 웃지만 삼성의 반 헌법적 노조탄압, 보수우익 단체에 자금지원까지 하며 세월호 진실을 가리려는 패륜, 장충기의 문자가 확인해 주는 ‘청와대, 검찰, 법원, 언론, 국정원’을 아래동생 다루듯 관리해온 삼성그룹 등 재벌 일반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갑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인권적 차원에서 지독한 폭력이자 범죄라는 것이다. ‘갑질’은 갑을이든 노자든 자본의 원하청의 문제이든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이 깨졌다는 증거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기초 전제가 무너졌다는 말이다. 이는 인간관계가 근대 이전 ‘봉건적’ 영역으로 퇴행되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그 시작은 노동을 인간 존엄의 근거가 아니라 일회용 휴지나 ‘하인 하녀’처럼 부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서 부터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의 인간다움 모든 것을 공격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강요한 것이 그 시작이다. 정리해고는 잘못도 없이 추방당할 수 있다는 것이고, 비정규직은 권리도 없이 의무만 지는 노동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자본에게 의무 없는 권리, 이유 없는 차별의 권력을 준 것이다. 이런 반칙과 특권이 보편화되고 세습화 된 세상이 헬 조선이고 그 구체적 현상이 ‘갑질’이다. 


‘약육강식 승자독식’ ‘권한의 상속과 세습’ 속에서 사라진 것은 민주주의다. 권력이 강요한 수직적 인간관계는 노동에 대한 존중,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대신 복종과 굴종을 원한다. 갑질은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로의 퇴행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가 되자는 사회, 노예적 노동이 가능한 사회가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갑질의 진정한 해결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수직적 권력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존중의 관계로 돌릴 때 가능하다. 모든 관계에서 민주주의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적으로 비정규직을 없애는 일이다. 그래서 최소한 권리와 의무의 쌍방관계가 있는 사회를 회복시켜야 한다. 나아가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만들어져야 한다. 노사관계에는 평등이 없고 회사 안에서 공평이 없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민주주의가 티끌만큼이라도 가능한 것은 노동조합의 존재다. 대통령도 의원도 뽑는 우리가 회사의 과장 부장은 뽑을 수 없다. 회사 문 앞에서 멈춘 민주주의를 회사 안으로 진입시켜야 한다. 그것은 바로 노동조합 할 권리의 보장이다. 모든 산업과 사업장에 ‘민주’노조 활동의 자유로운 보장이 있어야 탐욕의 화신 자본의 광란의 질주를 막는 최소한의 제동 기능, 최소한의 자정 기능이 유지된다. 


촛불이 광장을 이루고 정권마저 교체하면서 사회적 과제로 대두된 것이 ‘적폐청산’이다. 한국사회 적폐는 한국 현대사 자체다. 일제 매국노와 부역자들을 고스란히 부활시켜 독립 운동가들을 배척한 미국의 분단 정책 이후, 박정희식 군사독재, IMF 경제난 이후 승자독식의 헬 조선을 만든 돈의 독재, 그 사이를 부정부패와 반칙과 특권으로 촘촘히 엮어 이득을 챙긴 ‘정경유착’된 지배자들, 그들 중 최고의 부정한 힘은 재벌이다. 재벌은 한국형 적폐의 심장이다. 그래서 박근혜 권력을 끝장냈듯이 재벌이라는 적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재벌은 우리 사회 만악(萬惡)의 근원(根源)이다. 재벌은 경제 영역에 남은 유신정권의 몸통이다. 개혁이나 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해체가 필요한 대상이다. 우리 경제는 재벌이 대단해서 유지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반칙과 특권의 재벌과 부패 지배 세력의 패악질에도 버텨온 우리 노동자 민중이 대단한 것이다. 박정희가 없으니 한국은 발전했다. 마찬가지로 갑질의 몸통, 경제계의 박근혜, 적폐의 본산, 재벌을 없애야 민주와 인권이 확보된다. 재벌 해체가 정도다.공사이고 그 결과는 더 치명적이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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