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서 우리의 할 몫은?


우리는 지금 평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혐오와 증오 대신 존중과 친선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만끽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 한반도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하지만 이것이 아직 과정에 불과하며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분단이 만든 혐오와 증오, 전쟁을 이기고 존중과 평화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는 국면에서 예상되는 곡절과 부침에 맞서 우리가 단지 박수치는 구경꾼이 아니라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는 역사의 주축이 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김정은은 판문점 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좋은 결과가 좋게 발전하지 못하면, 기대가 낙심이 된다.” 평범한 말인데 가슴이 뜨끔했다. 김정은은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합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낙심(落心)이 된 것은 미국과 남한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이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남북 북미 관계의 난관이 위장평화 공세로 뒤통수를 치는 믿을 수 없는 북한 탓이라는 것과 다르다. 북에서는 약속의 파괴가 반공반북에 빠져 북한 붕괴만 노린 남한과 미국의 탓이다. 과연 누가 맞을까? 우리는 이런 판단에 참고가 되는 예를 생생히 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다. 유럽과 유엔 국제 원자력기구 IAEA가 이란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해도 트럼프는 약속을 파기한다. 미국과의 약속은 미국만 깨트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노동운동의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 사람은 세 가지를 잘 알아야 한다. 첫째 미국, 둘째 북한, 셋째 우리 자신이다. 미국은 은혜를 베푼, 자유민주의 수호자가 아니라 패권국가로 전쟁원인을 조작하거나 거짓으로도 침략을 하는 나라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전쟁을 일으킨 국가, 모든 전쟁의 배후인 유일한 국가, ‘미국이 곧 세계’라고 믿는 제국주의 국가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김정은이 보여 주는 일상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북에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 정도라도 이해를 하기를 바란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 아는 것의 시작이라는 성인의 말을 새기자. 우리는 북을 아무것도 모른다. 비참한 거지, 아니면 세습 독재에 열광하는 기괴한 괴물로만 볼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을까? 사드를 안보라 믿거나 밀어붙이는 모습, 미군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모습, 진실을 현실을 이유로 뒤로 밀어 버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해온 윤똑똑이들이다. 이런 무지와 몽매가 표현된 대표적인 양상, 세 가지만 꼽아 본다.

 

첫째는 북한의 변화만을 말하는 경향이다. 남북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지만 이들은 ‘북핵 폐기’만 말한다.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마치 패배자의 항복 문서 작성하는 것쯤으로 안다. 정상적이라면 북이 우려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기존과 다르게 할 것인가를 챙겨야 한다. 북의 극단의 전쟁 공포로 몰아넣는 전쟁 연습의 중단, 남북관계를 범죄로 만들어 원천 봉쇄하는 ‘국가 보안법’의 철폐, 평화와 통일을 종북이라 하면 심지어 의원을 가진 합법정당을 해산시킨 우리 안의 야만에 대한 성찰과 반성, KAL기 폭파, 천안함 사태 등 분단을 이유로 의문조차 불온 시 한 무수한 역사적 만행에 대한 진상 규명 등 우리 안의 분단 적폐를 제대로 제거하는 것에 백방의 노력을 해야 한다. 북송을 원하는 평양시민 김련희나,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외면하면서 북에 억류된 남한 사람은 석방하라는 이 기괴한 염치없음을 성찰해야 한다.   


둘째는 평화를 돈벌이 기회로 보는 경향이다. 북한의 광물자원이 어떻고, 북한의 노동력이 어떻고, 시베리아 철도가 어떻고 하는 논리들을 보면 분단의 순기능을 말하는 척하면서 북한의 자본주의화, 경제 식민지화라는 탐욕에 눈이 벌게진 모습이다. 사회주의 구상무역 체제가 붕괴되고 오직 자본주의적 국제 경제만 존재하는 조건에서 안으로 사회주의적 내실을 견지하고 밖으로 자본주의적 국가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좌우편향과 실패와 실수 그리고 오류 등은 그런 어려움은 반증이다. 문제는 그것을 허점으로 보고 사회주의 체제의 내적 파괴를 노리는 관점을 그대로 연장시키는 것으로 북을 보는 순간, 그것이 이명박근혜 시절, ‘잃어버린 11년’의 연장이고, ‘통일은 대박’이라는 천박함의 계승이며, 무엇보다 ‘북 붕괴론, 흡수통일론’의 내용적 관철이다. 평화를 말하면서 만주를 회복하고 시베리아를 장악한다는 식의 사이비 국수주의자들이 판을 친다. 

 

세 번째로 평화를 말하면서 분단 전쟁 체제를 영구화하려는 경향이다. 미국 스스로 논의하는 미군 문제에 대해 변동 절대 거부라는 한국의 수구세력과 그런 주장에 눈치를 보며 통일 후에도 외세에 예속되자는 미군 지속 주둔론이나 펴는 집권세력들의 모습이다. 남한에서 그럴 듯한 현실주의는 결국 현실 구조에 대한 굴복이다. 통일을 접고 평화체제 유지하는 ‘분단 관리’ 주장들이 그렇다. 목적을 잃은 길은 결국 모든 것을 잃은 길임에도 말이다. 


자본주의는 공짜가 없다. 남북관계에서 최고의 사기이자 거짓은 이른바 ‘퍼주기’다. 남이 북에게 퍼준다는 환상은 북은 가난하다는 편견과 합쳐 부동의 전제가 되었다. 마치 남한이 천사나 된 듯하지만 남한 내 노동자 민중들을 쥐어짜는 그들이 행여 더 먼 타인에게 천사 노릇을 할까? 이윤이 목적인 자본, 하나를 주면 열을 뺏아 가야 하는 자본의 경영법이 엄연한 현실인데 퍼주기는 무슨 퍼주기인가? 우리는 헬 한 남한에 살면서도 북한에게는 상식조차 견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북의 파격만큼 반드시 존재해야 할 남의 파격을 준비는커녕 생각도 않는다. 미국에게는 굴종과 패배, 북에게는 오만과 나태와 싸워 자주와 겸손, 존중과 친선의 힘을 사회적으로 갖춰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평화가 통일로 흐르고 그 흐름이 자주와 평등의 남북, 차별과 혐오가 없는 해방된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견지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몫이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