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똥 씌운 비단 보자기가 되려는 사법부(司法府)


대법원에 절망한지는 참 오래됐다. 1,2심을 뒤집어 부당하게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에게 복직대신 빛 1억과 동료의 죽음을 선사한 것이 시작이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칙’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말로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청구권을 제약했을 때, 콜트 콜텍 정리해고 사건에서는 장래 경영상 위기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정리해고도 정당하다고 했을 때,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에서는 고등법원이 회사의 회계조작 사실을 추가 증거 없이 결과를 뒤집어 버렸을 때 내 마음속에서 대법원은 헬 조선의 막장의 위치에서 고사하고 있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에서 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이면서 ‘청와대, 대법원 양측에 모두 윈-윈하는 결과’라 할 때 대법원은 아예 권력의 시녀가 되었다. 대법원의 타락은 법원 전체의 타락이다. 사법부(司法府)가 사법부(死法府)가 되더니 아예 돈과 권력을 위한 살법부(殺法部))가 되었다. 

 

대법원의 책임은 법의 공정성과 일관성에 대한 수호에 있다. 공정성에는 사회적 균형감각에 의한 관용도 섞여 있다. 동일한 도장이지만 갑의 도장과 을의 도장은 품은 힘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난다. 갑은 그의 힘으로 사태에 대한 상황과 증거를 수십 개 만들 동안 을은 진실 된 증거 하나 지키기도 어려워 오직 양심에 호소하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에서 대법원은 법의 정의로움을 민중들에게 보여 줘, 법을 통한 해결이라는 사회적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1심보다는 2심이 양형을 줄이고, 2심보다는 대법이 조금 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통을 이해하는 판결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근혜시대 양승태 대법원장의 시간은 이것이 거꾸로 흘렀다. 우리는 대법원 판사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개인적 편향의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그것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음모적이며 더러운 양아치들의 공모였는지가 밝혀졌다.


양승태는 그 기본이 양아치다. 오직 자기의 실리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양아치 의식의 최고봉은 ‘돈만 되면 뭔 짓을 해도 되고’ ‘당선을 위해서는 뭔 말을 해도 된다’는 이명박이다. 하지만 그는 본판이 장사꾼이라 그렇게 닳고 닳아 만들어진 생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법관은 그러면 안 된다. 선의와 양심까지 바라지 않아도 시쳇말로 직분에 대한 ‘가오’는 있어야 한다는 최저한 중 최저한의 기대조차 저버린 양승태의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수단화’는 우리사회에 대한 가장 절망적인 표현인 ‘헬조선’의 ‘헬’조차도 너무 가벼운 은유라 생각하게 한다. 

타락한 힘들, 타락한 명예들, 타락한 권위들이 만들어 논 결과를 보면 그 계급적 선명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법란(亂)의 특징은 판사들의 직업적 이익을 위해 스스로 정권에 부역한 것이다. 문제는 부역의 내용이 모두 노동자·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법의 호소에 대한 난도질이었다는 점이다. 모든 타락은 부정한 돈과 권력의 흉기가 된다는 말이 선명하게 입증한다. 얼마나 무서운 가진 자들의 계급적 당파성인가?


다행히 법학교수, 법학자,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지난 5일 ‘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 농성에 들어갔다. 그분들은 말한다. “법원은 우리를 한 번 판결로 좌절시켰고, 재판 거래 의혹으로 두 번 눈물을 흘리게 했다”, “우리 법률가들은 변호사로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내팽개쳐 버린 법원에서 재판할 수 없고, 교수로서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고 독립성을 포기해버린 법원이 권력과 유착하는 사회에서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칠 이유가 없다”,며 “시민의 권리를 살피기보다는 절대 권력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동료 판사의 재산과 친구관계를 감시하는 데 여념이 없던, 상고법원 도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거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을 단죄하기 위해 새로이 고발에 나선”것이다. 대법원이 스스로 자폭한 현실에서 다시 대법원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법조인들의 노력조차 없다면 법이 우리에게 왜 필요할 것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이 판사회의를 통해 ‘고발이나 수사 의뢰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에 이어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 의뢰 등의 조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합리적인 근거 없는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 제기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하여 진실규명은 필요 없고, 국민들은 이제 그만 떠들라는 경고를 한 셈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법관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그 책임을 통감한다”,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개혁방안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으니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하는 모양인데 ‘진실규명과 관련자들의 처벌’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은 어떡해야 나오는 가능한 결론일까? 낡은 집을 부수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모습은 참 흔하다. 한국 지배문화의 중심 ‘꼰대들의 전형적인 사태 해결책’이다. 벌거벗은 임금과 그 주변 위선들의 수법이다. 타락한 자들은 타락에 대한 반성과 혁신이 타락을 털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싫어한다. 새로움은 낡음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사와 법원장 그리고 고법 판사들은 양승태의 대법원 양아치화에 덕을 봐 지금 지위에 도달한 이들일 것이다. 운명공동체나 다름없으니 그들은 이미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대신 다른 이들의 눈을 가리려 한다. 기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묻거나 외면해야 한다. 그 결과 나오는 흔한 모습이자 바로 지금 저 모습이 타락된 한국 역사가 만든 적폐의 전형이다. 마찬가지로 타락이란 노동자 민중의 입장을 떠나, 가진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최저임금을 통해 25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능욕하는 현 정권도 자기들의 첫 마음에서 얼마나 타락한 것인지 타락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 볼 일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하란 말이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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