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데...


더불어 민주당만 신나는 잔치가 된 선거가 끝났다. 선거결과를 요약한다면 ‘수구 반동 폭망, 중도 보수 대박, 진보 변혁 깜깜’ 정도 되겠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선출제도인 선거를 ‘귀족제도’라 했다. 선거 결과가 항상, 귀족적 힘을 가진 존재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돈 많은 부자들, 정치적 유력 인물들, 아주 유명하고 인기가 많아 돈과 권력에게 쓰임새가 요긴한 인물들의 승리만 있는 뻔 한 경주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결과지 타협의 결과가 아니다. 민주공화라는 정치 체제는 노예적 질서, 봉건적 체제에 대한 노동자 민중들의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 혁명적 각성의 과정, 지배자들의 목을 매달고 자른 단두대의 시간을 거쳐 왔다. 민주주의는 신분, 종교가 만든 세습되는 특권과 부정부패한 반칙들에 대한 민중들의 역사적 승리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서구의 정치에서 보듯 신분과 종교를 대신한 ‘돈’이라는 우상이 그 과정과 형식을 지배하면서 다시 한 번 정치를 기득권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 유일물이거나 유일 형식이 아니다. 외려 선거는 ‘면피와 은폐의 기능’이 강력해 가장 유능한 지배계급의 권력 유지의 절차다. 선거가 흔히 조직과 바람의 대결이라 하지만 바람조차도 지극히 조직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국정원 댓글과 드루킹 소동에서 확인한다. 치장이 아닌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이번 선거 결과보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로 태운 시간이 더 소중한 이유다. 

    

한국에서 선거는 4.19를 만들었지만 유신독재의 성립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선거는 양날의 칼이다. 돌아보면 노동자 민중의 거대한 저항이 세상을 흔들었지만 선거를 통해 세상은 다시 옛날로 퇴행한 다람쥐 쳇바퀴가 우리 현대사이기도 하다. 장면 정부 직전에 4.19, 양김시대를 만든 1987년 시민항쟁 노동자 항쟁, 김대중 정부 직전의 날치기 총파업, 노무현 정권 직전의 미군 장갑차에 학살된 여중생 죽음으로 만든 촛불 항쟁, 그리고 이번에 탄핵 촛불항거까지 낡고 부패한 불의의 지배 권력을 붕괴시킨 것은 노동자 민중이었지만 그 성과물은 선거를 통해 기득권을 양분한 보수 야당세력의 몫이었다. 죽 쒀 개주는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과거와의 투쟁에서 현재의 승리다. 과거에게 뺏긴 현실의 10년을 그 적폐의 세상을, 극단의 세계를 보수라 부르는 것은 반(反)상식이다. 수구, 반동, 전제의 시간은 보수가 아니라 파시즘적 반동이다. 그럼으로 민주당의 승리는 수구에 대한 ‘합리, 상식’적 보수, 기껏 잘해야 흔히 말하는 ‘중도 보수’의 승리다. 민주당을 진보라 부르는 것은 수구세력이 자기를 보수라 주장하는 것만큼 정치적이다. 하지만 박근혜를 보수라는 부르는 것이 민망한 만큼 민주당을 진보라 부르는 것은 혼란하고 뒤틀린 개념이다. 예를 들면 탄핵의 역풍으로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노무현 정권이 진보의 최소의 전제, 아니 자유주의적 보수의 최소한의 자부심인 정치사상의 자유를 거부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한 이유가 당시 자유 한국당의 전신 한나라당의 반대가 아니라 실은 노무현 정권시기 민주당 안에서 조차 국보법 찬성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보여주는 일관적인 안보관은 전형적인 ‘보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민주당을 진보라 하는 것은 유신 독재와 친일 잔재를 민주와 독립운동 세력이라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다.


망한 보수를 되살리기 위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변신 쇼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오른쪽 날개만 단 기형 새가 이승만 정권이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분단정부 수립 자체가 아니다. 서구인들의 눈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민주주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라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온 역사를 살았기 때문이다. 분단과 독재와 독점과 부정부패와 반칙으로 이어진 오욕의 역사, 참담한 역사 속에서 근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위대하다. 1987년 대투쟁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헌법 정신을 반제 자주 3.1운동과 반독재 민주 4.19에서 찾는 것은 그것만이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문재인 정권의 수립은 70년간의 오도된 ‘오른쪽 날개’의 정립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형성했지만 상처지고 오염된 우익을 치유하고 재활하는 과정이고 지난 대선과 이번 선거라 할 만하다. 한국정치에서 제대로 된 진보 보수 정치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자유한국당류의 수구 반동의 부활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정치의 역사와 맥이 세워져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축으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지켜온 그들의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다. 상해임정과 김구와 4.19를 계승하고 5.16에 저항하며 유신 독재에 총구를 겨눈 김재규를 품고 양김과 노무현과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자기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남한에서 보수정치의 정상적인 구축이다. 


우익, 오른편의 날개가 지나치게 과잉되어 날개를 몸통으로 여기는 몽매가 판을 치는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좌익, 왼편의 날개는 돋다 만 존재다. 진정한 좌익이 형성될 최소한의 전제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진보’라는 말 자체가 눈물겨운 사투였다. 그 사투를 감당한 것은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민주노동당 이었지만 수구의 득세가 보수라는 말을 오염시키자 진보라는 말을 자유주의적 보수 세력이 탁란(托卵)을 통해 진보완장을 차고 있다. 박근혜가 진보의 겉, 붉은 색을 날치기 하자 민주당과 그 주변은 아예 진보의 속살을 가로 챈 꼴이다. 그러니 여전히 한국은 좌익이 없이 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외날개 새라는 것이다. 좌우익을 갖춘 정상적인 새가 되기 위해 시민들의 과거 적폐에 대한 적대의 눈과 함께 미래를 새롭게 여는 눈도 떠야 한다. 민중당 후보와 전혀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무소속 젊은 후보가 낙선하는 것을 보며 과거를 보되 미래를 보지 목하는 맹목의 정치, 남한 정치의 본질적 적폐가 그대로 살아 있음을 본다. 절반의 승리를 완전한 승리로 만들기 위해 노동자 민중들의 민주적 진보적 지혜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한국 정치에 왼쪽 날개를 만드는 선거제도와 정치를 위해 과거를 보는 눈과 더불어 미래를 보는 눈도 뜨자.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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