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래 문화학교와 함께하는 마을 답사- 두번째이야기


그 때 옆집 언니는 가발공장에 다녔다. 엄마는 반찬값을 번다고 인형 눈을 붙이기도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부업거리를 마당 한가득 늘어놓고 동네 아줌마들도 바쁘게 일했다.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공장에서 일거리는 넘치게 많았던가 보다.
 삼립빵 굴뚝에서 나는 냄새는 너무 맛있었다. 두부공장의 하얀 김에서는 할머니 냄새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뎅 공장이 나오면 빨리 지나쳐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오뎅을 장화 신은 아저씨가 마구 밟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고부터다. 1호선 철길 따라 어른들이 줄줄이 공장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그 때 그 많던 공장은 어디로 갔을까?
  1970년대 80년대의 금천(당시 구로구)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여기가 거기 맞아”라고 놀란다. 어느 해인가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대거 이 곳 디지털 단지로 입주했다는 걸 알고 신기했다. “너는 아직도 여기 사니?”라는 말과 함께 주소가 그대로인 나를 참 무던한 인간으로 봐주듯 했다. 뭐, 내가 고집 했다기 보다 부모님의 생활력과 역시나 나의 생활력이 우리 동네와 필요충분조건에 맞았을 뿐인데…
 어쨌든 공장이 있던 많은 자리에 건물을 높아지더니 벤처타운이니 쇼핑타운이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연구소라는 것도 생겼다. 건물모양 만큼이나 내용도 달라진 것이다.
우리 동네에 공장을 거부하는 움직임은 지하철 역명이 바뀐 것과 거의 동시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공장을 거부하는 것일지…공장지대라는 ‘싼티’나는 이미지를 바꾸자는 것인지…확실치 않다. 다만 공장지대라면 집값도 땅값도 심지어 아이들 교육에도 나쁘다는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구로공단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개명된 지(2004.7.개명)7년이 되었다. 아,  이미지 쇄신에는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입에 달라붙지 않는 “디지털”이라는 말이 구로공단역이나 가리봉역(2005.7.1개명)과 나란히 쓰일 줄이야. 
  가발공장의 큰 굴뚝이 없어지면서 ‘그 많던 공장’들 중 일부는 사방유리로 된 아파트형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들은 대륭테크노타운7차, 이앤씨드림타워6차, 우림라이온스밸리C동, 월드메르디앙벤처센터2차…
 벤처 사무실에서 공장까지 깔끔하게 아파트로 입주한 것이다. ‘디지털’을 지향하는 정책으로 ‘벤처’지원자들의 사무실이 대거 오픈과 이전을 해왔다. 지금 이곳에선 화이트족들과 블루족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서울시 창업지원센터와 금천 창업지원센터는 어려운 취업보다는 창업훈련을 통해 ‘새출발’을 권하고 있다.  청년들이여 가까이서 길을  찾으시라!
 또 의류공장이 우점 하던 1~3공단 안에는 패션 백화점이 우르르 생겨난 풍경이 낯설지만 경인공업지역의 중심이던 금천의 모습이 현대화된 것 일 뿐이다. 다만 금천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든다는 거. 우리 동네의 익숙한 낯설음을 다르게 즐겨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서울문화재단이 옛 인쇄 공장을 개조해 “금천예술공장”으로 시민의 예술 할, 향유할 기회를 넓히고자 하고 있다. 기꺼이 주민으로 그 곳을, 그 것을 즐겨야하지 않겠는가.

김유선
산아래 문화학교 대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