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답사- 다섯번째 이야기
어딜가도 골목길엔 사람꽃이 핀다


 구청의 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골목이 넓어졌다. 그래서 좁다란 골목을 두고 주차문제를 앓던 이웃들을 평화롭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장 너머 들리던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우는 소음이 되기도 했다.
뭐, 이건 이웃 간에 사생활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 때로 어이없게 참견하려 드는 새댁이나 살림 훈수 두시는 이층집 어르신. (휴우) 길게 늘어지는 잔소리는 정말 참기 어렵기도 했다. 허나 이런 이웃이 귀찮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연로한 시어머니의 친구가 되어주는 새댁이,  낯선 사람을 경계해주는 어르신들이 참 고마웠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곳이 바로 이 골목. 



 여차저차하여 그 골목을 떠나 아파트로 들어온 지 2년 남짓.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드나드는 입구가 다르니 아직 한 번도 그 이웃은 마주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와, 기상천외하다. 무슨 구조가 사람은 많이 사는데 그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못할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의심없이 그런 집단 거주문화를 살고 있거나 지향하는 우리네 삶이란...

 엘리베이터를 통해 만나는 이웃은 목례정도가 적당하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아는 척을 해주다간 완강한 거부의 눈길을 받는다. 몇동 몇호의 익명성으로 통하는 이 동네에선 내가 무슨 일을 당해도 내다봐줄 사람이 없다. 별안간 그 사실을 알고 크고 단단한 걸쇠를 하나 더 달았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건만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이 이곳엔 없다. 귀신 다음으로 무서울 건 없다고 생각하던 나는 요즘 겁을 달고 산다. 우리집 벨을 누르는 우체부나 동장, 택배 아저씨, 부녀회 아줌마, 경비 아저씨까지 이유없이 범인이 되어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아! 정말 슬픈 구조다. “몇호 아줌마 ”라는 건조한 이름 뒤엔 서로를 책임질 수 없는 무심한 이웃들이 있다.

좀 시끄럽고 대책없이 참견하는 이웃들이 그립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 커나가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는 것. 어르신들의 건강한 수다가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좀 얻어먹고 많은 것은 나눠먹기도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남는 봉투에 옆집 것을 채워 넣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 사는 골목 . 금천엔 그런 골목은 아주 많다. 새 주소로 바뀌어 좀 낯설기도 한  장미길, 행궁길, 별장산길, 정훈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골목길을 따라 산책을 해보시라.

산책, 마음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나선 골목길에서 오늘은 무엇을 만날까. ‘감나무집 감나무가 이번 비에 많이 떨어졌네.’, “부지런도 하셔라, 화분마다 뭘 저리 심으셨데.‘, '폭탄(친정 옆집 사는 개이름)이 오늘은 조용하구만.‘,  ‘아이구, 며칠 전 입원 하셨다더니 세탁소 문이 열렸네.’,  ‘저 녀석들 몰려다니며 담배나 피는 건 아닌지 몰라.’,  ‘무슨 냄새가 이리 좋아...이 집 좋은 일 있나.’,  ‘어디 가시나...강원도 아주머니 잔뜩 멋내시고.’,  “아줌마! 어디 가세요?” 쪼르르 나도 모르게 달려가 팔을 잡는다. 나는 이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 우리 집과 오랜 이웃으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엄청난 역사를 쌓은 덕분이다.

 


 

김유선  대표
산아래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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