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호암산 315m(해발) 정상에 큰 우물이 있다. 물 마시자고 그 산꼭대기에 누가 우물을 팠을까 생각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큰 숨을 몰아쉴 일이 몇 번 생긴다. ‘아이고, 장난이 아닌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 쯤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 때쯤이면 몸이 산에 적응되어 가볍게 주변을 둘러볼 정도가 된다. 조금 더 힘을 내서 몇 걸음 더 내디디면 시야가 갑자기 “확” 트인다. 공중부양 한 것처럼 서울시내와 하늘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더 가까이 가서 63빌딩이니 남산이니 북한산을 내다보면 멀리 일산까지 보이니 안전하게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자.

‘그래 뭐, 올라온 보람이 있다.’ ‘속이 뻥 뚫리는 거 같다’며 쉴 자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다 보면 우아한 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큰 연못(?)을 만나게 된다. 들어가지 못하게 난간까지 둘렀으니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여기가 그 우물, 한우물이라는 것을 놓치게 된다.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이다보니 우리가 알던 동네 아낙들이 물을 긷던 그 우물이 아니다. 게다가 자세히 둘러보면  상하층이 구분되는 거대한 석축을 볼 수 있다. 석축 중엔 석구지(石拘池)라는 글귀 적힌 것도 보인다. 숨은 그림 찾듯 살피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우물 아래 펄흙 속엔 발굴당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의 석축은 동서 17.8m, 남북 13.6m, 깊이 2.5m로 지금 보이는 조선시대 우물크기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구름을 담고 있는 한우물 아래를 내려다보면 석축아래 또 다른 석축의 흔적이 보인다. 이 때 발견된 유물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이나 한양대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우물 속에는 통일신라시대 서해바다에서 한강 남북 쪽을 두루 살피며 나라 걱정하던 군병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전에는 백제의 땅이었으니 그들의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 백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우물이 넉넉한 크기인가보다. 가물어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으니 온 마을 사람들의 기도가 담긴 우물이다. 한없이 크다.

고요하게 멈춰 있으나 짙푸른 물속 깊은 곳에 그 많이 이야기가 담겨있으니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백운산, 청계산과 더불어 우리 동네 물줄기의 시작이니 처음으로 돌아가 새해 맞이하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만하다.
어느 해인가 1월1일 영하6도에 그 곳까지 올라가다 얼음이 됐다 풀려나기도 했다. 많은 인파에 좀 놀랐다. 그리 요란하지 않게 가도 그 우물은 늘 마르지않은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고 내 이야기도 담아두자. 맘 놓고 못한 얘기, 속상한 얘기, 슬픈 얘기, 불쾌했던 얘기, 신났던 얘기, 재밌는 얘기, 맘속으로 그리는 은근한 속내도 두고 오자. 갈증 났던  이야기의 목마름을 풀고 오자. 동네 우물가에서 풀지 않으면 어디서 풀겠는가!

우물에서 벗어나 30미터쯤 가면 왠 돌짐승이 나타난다. 처음엔 산성과 주변을 지키는 해치상이라고 했다는데(호암산이니 호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한다.)
석구지(石拘池)라는 기록의 발견으로 “석구”라 불리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해치일 수 없는 둥글둥글 한 인상이다. 뒤태는 더 둥실둥실 귀여운 석구라 웃음이 절로 난다. 오래된 세월에 더 부드러워진 모양새이다. 그 주변을 돌아보면 호암산성의 흔적도 발견된다.

갑자기 뾰족 솟은 흙더미와 그 아래쪽엔 석축을 쌓은 흔적이 옛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병사들이 서있던 곳에 가서 나도 서보자. 산성을 따라 더 높이 올라가면 서해바다가 보인다. 물론 날씨가 좋은날이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증거사진 찍다가 혼쭐 난 적 있다. 노을 지는 풍경에 빠져 사진을 찍다가 어두워져 하산 길에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곳은 가 볼만한 곳이다.

한우물을 찾아가려면 금천구청 역에서 마을버스1번을 타고 벽산아파트 뒷편 호압사 앞 정류장에서 하차-호압사-한우물로 가는 코스와 은행나무 정류장에서 시흥계곡(별장산길)에서 불영암-한우물로 가는 코스 등이 있다.

 

 




산아래 문화학교는  시흥2동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희망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학교입니다.  대표 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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