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고 - 아빠가 쓰는 세남매 성장일기

아들이 이제 열 살이다. 초등학교3학년. 80년대 ‘국민 학교’ 3학년에 담임샘 성함하고 파마머리 똥그란 얼굴까지 생각나는데 나의 아들이 지금 그 나이이다. 앞으로 무서운 속도로 커 나가겠지. 군대에 갈 나이도 곧 닥치겠지.
강화도에서 해병대원들의 끔찍한 총기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21세, 20세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왕따를 시키고 피해자인 사병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뉴스를 통해 ‘기수열외’란 생소한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기수열외란 선임을 선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후임들에게까지 선임대우를 못받게 하며 심지어 욕설에 폭행까지 일삼는 그들만의 ‘전통’이란다.

여기서 떠오르는 단상이 있다. 제대한지 어느 새 15년이 훌쩍 흘렀지만 나의 청춘의 26개월을 구금당했던 90년대 초반의 경기도 어느 산골짝 포병대에서 만났던 어떤 후임병의 모습. 그의 이름은 일명 ‘최스타’였다. 이등병때부터 장성급 행동을 일삼아 장성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인사계(별명이 난쟁이똥자루였다. 키가 워낙 작으신 양반이라..)가 붙여준 별명이다.

최스타는 6개월 정도 차이나는 나의 후임이었다. 충청도 어느 작은 마을에서 왔다던 그는 말수가 적었고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으로 말수가 적어 대화가 힘들었다. 말을 시키면 대답 한번 듣기가 힘들었다. 체력도 약해 작업을 시키면 후들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내가 속했던 부대는 포병대였는지라 당시만 해도 매일 밤마다 공식 점호가 끝나면 ‘식기당번’이라 불리는 실세 기수가 후임들을 교육하곤 했었다. 욕설과 폭행은 일상적이었다.
그때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군대라는 곳에서 한 해 500명 이상이 죽어나가던 때였다. 누가 어디서 죽어나갈지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이 생기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받드시 생긴다. 특히 남자들만 모여 생활하는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착하고 여린 심성의 병사들이 주로 낙오의 대열을 메꾸곤 한다. 최스타도 그런 점에서 유력한 후보였다.

그가 상병 진급한 날 밤이었나? 취침점호를 마치고 난쟁이 똥자루 인사계가 뒷짐을 지고 한 마디 하던 날이 말이다.
“우리 최스타가 이제 상병이 되었다. 모두들, 최스타가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글쎄다. 그 말이 왜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까…. 인사계가 그 말을 하고 내무반에 흐뭇한 미소가 흘렀던 것 같다. '우리 한번 힘을 모아 최스타를 제대시켜 무사히 고향에 보내주자. '는 공감대였나 싶다.
그랬다. 최스타의 동기들은 작업이나 훈련시 최스타를 도왔고, 선임들은 그를 어느 정도는 귀엽게 봐주었고, 후임들은 최스타를 철저하게 선임대우 해주었다.

만약 못난 선임이라고 우습게 보는 말을 한마디라도 했었다면 그를 포함한 그 동기들은 철저히 보복당했을 것이다. 감히 엄두를 못낼 정도로.
조직에 적응못하는 병사들을 자체적으로 낙오시켜 왕따시키는 모습은 그 때는 없었다.
군대면제자들이 모여 나라를 이끌어 가시니 있는 집 자식들은 이중국적취득으로 죄다 빠져나가고 나의 아들은 단지 못난 애비 만나 군대에 가게 될까…
아, 이나라의 군바리들이여. 무사히 제대할지어다!

                                                                                                           김희준 (독산1동)
필자는 독산1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재빈, 재은, 재령 3남매와 함께 성장일기를 쓰고 있는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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