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 살, 나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생이다. 가난뱅이 아빠를 만나 좋은 점이라면 사교육에서 해방(?)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랄까?
회사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각종 학원을 두루 섭렵하고 그중에 영어학원은 필수라던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나름 ‘영문학전공자’임을 가끔 한번씩 내세우는 아빠는 해외생활을 한 몇 년 하지 않는 이상 학원에서 배워온 몇마디 영어를 밥상머리에서 중얼대는 식의 영어교육은 현재 단계로선 전혀 필요없다는 나름의 소신으로 아들을 ‘방목’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하면 된다! 전공자인 아빠가 도와주마..ㅎㅎ..
아들 녀석은 저녁마다 한 시간씩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 가뜩이나 시력에 대한 걱정이 앞선 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막을 수도 없고 하여 게임을 할 수 있느 시간을 정해놓고 허락하고는 있지만 아들이 게임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이날도 그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싶어 시계 바늘을 지켜보다 아들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니 게임에 빠진 모습이 몰입도 이런 몰입이 없을 성 싶다. 이런.
잔소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참지 못하고 한 마디가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시간 다 되지 않았어?” 그런데 문제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간 것이다. 아이는 “아,,아니,,” 라면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이 또 아빠의 신경을 거스리게 하니 결국 나오는 한마디 “얼른 꺼!”
아들은 급하게 컴터 전원을 끈다.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빠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면 딴청을 피운다. 방을 정리하고 나온 아들이 나오는데 아빠에게 조용히 전하는 말이 정곡을 찌른다.

“아빠 화났지?” 일단 오리발을 내미는 수 밖에..
“아니, 화 안났는데?”
“화 냈잖아” 허허.. 이렇게 된 이상 진실을 토로할 수 밖에 없다
“아,,, 그게 말이지.. 니가 좀 오래 하는 것 같아서..말이지..”
아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한다.
“아냐, 내가 시간 다 보고 있었어, 시간 되면 끌라고 했단 말이야.. 아빠 화내지 마, 알았지?”
흠...그래 니 말이 맞다. 시간이 덜 된 거 같기는 했었어..
“알았어, 아빠 화 안낼게. 앞으론..”

그렇게 그렇게 잠시 집안을 감돌았던 소용돌이는 잦아들었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좋은 이유는 뭘까.. 아이는 아빠에게 화내지 말라고 했다.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화내지 말라고 얘기하면 아빠가 자기 말을 들어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던 건 아닐까? 아들에게 그만큼 신뢰가 있는 아빠라는 것 아닐까? 언젠가 아이는 말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회사끝나고 매일매일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아빠도 니가 옆에 있어서 참 행복하다. 너도 내 맘 알지?

김희준  (독산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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