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에 맞선 콜트콜텍 해고자들의 12년 투쟁





콜트와 콜텍은 박영호라는 자본가 가족의 절대 지배 속에 있는 기타를 만드는 회사다. 인천의 콜트에 노조가 생기자 대전에 무노조 공장 콜텍을 만든다. 그런데 콜텍에도 노조가 생기자 아예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정리해고를 한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에 나선 지 4300일 넘었다. 2007년 초부터 지금까지 만 12년의 세월이다. 대표적인 장기투쟁사업장이자 부당한 해고에 더해 박근혜와 양승태의 부패한 사법거래/사법농단의 희생양임이 드러난 사건이다. 그 노동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정년 전에 일터로 돌아가자는 마지막 투쟁을 하고 있다. 행진을 시작하면서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말한다. “제 기억 속에서 2007년 4월9일 그날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정리해고의 길인 줄은 회사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억울함을 법 앞에 호소했지만, 법마저 억울한 노동자의 아픈 마음을 보듬기는커녕,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고통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도입된 정리해고 제도가 이윤의 도구가 되어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하고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가정이 파탄 났고, 해고자의 삶 또한 파탄 났습니다. 정리해고제도를 폐지시켜야 합니다.”

정리해고제는 기업이 긴박한 위기에 빠질 때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인원감축을 법적으로 강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가 시작됐다. 기업의 임의적인 잣대와 자의적 해고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직접 파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들어진 법은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사라지고 자본가들이 노동자에게 휘둘러대는 (사회적)살인의 흉기, 망나니 칼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해고에 대해 ‘오죽하면 자르겠나’, 투쟁을 포기하지 않으면 ‘회사가 거기만 있냐’며 비튼다. 문제는 살인의 흉기가 여전히 살인자의 손에 있다는 것, 그것을 고발하고 흉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살인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참고 굴종하다 자발적 노예가 되고, 같은 노동자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사탄이 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만든 헬조선에 굴복하라는 노예들의 주문이다. 투쟁을 결심하고 저항에 나선 노동자들은 단지 자기만의 생존이 아니라 우리 사회 불의 적폐와의 투쟁에 나선 이들이다. 미래는 좀 달라야 한다는 희망을 향한 가장 큰 노동이자 절박한 노동이다. 

“고용의 여력이 있어도 그들 (5명)을 고용할 수 없다. 그들은 합리적인 노조가 아니다.” 목동 굴뚝 농성을 하고 있는 스타플렉스 사측의 말이다. 어용노조가 아니기에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은 노조에 대한 극단의 혐오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혐오하는 반 헌법주의가 한국 경영자들의 상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콜트콜텍의 정리해고도 본질은 노조에 대한 혐오다. 혐오를 감추기 위한 내세운 사유는 ‘장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 고법에서 터무니없다했지만 양승태와 대법원관들은 ‘박근혜 정책 보위와 상고 재판소 설립이라는 실적’을 위해 뒤집었다. 

노동자 계급은 투쟁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왔다. 대표적인 역사적 예가 ‘보통 자유선거’제다. 보통선거 쟁취는 실제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의 민주주의와 무관하다. 귀족 성직자 돈 많은 남자들의 특권 민주주의를 모든 이들의 민주주의로 만든 것은 가난한 노동자들과 소외된 여성들의 주체적 투쟁이 만든 결과다. 마찬가지로 모든 노동권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바쳐 만든 피의 역사가 담겨 있다. 노동권은 크게 보아 ‘해고에 대한 제한’과 ‘노동시간 줄임’ 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노동은 노동자들의 생명 줄이다. 맘대로 잘리지 않을 권리와 24시간이라는 고정된 시간 속에 남에게 팔려 소외되고 억제당한 시간을 줄여 자유롭고 인간다운 시간을 확보하여 존엄하여 행복하게 살 권리투쟁이다. 그 결과 우리는 노동자가 잘못이 없는데 자르는 것은 범죄로 부당하다는 기본권을 쟁취했다. 그런데 정리해고는 잘못 없어도 회사가 긴박한 위기라면 목을 잘라도 된다는 법이다. 노동자들에게 100년 이상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 시간을 박탈한 것이다. 

그런데 콜트콜텍에서 정리해고의 모든 전제인 ‘긴박한 위기’마저 없애 버렸다. 노동법 없는 시간으로 돌아 간 것이다. 노동자들에겐 어떤 권리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노예화 선언이다. 100년도 아닌 200년이 넘는 노동자 민중의 민주와 인권투쟁의 시간을 도려내는 폭거다. 더 큰 문제는 폭거의 주역이 돈과 권력과 그리고 국가 제도의 야합을 상징하는 대법원의 타락이라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공간이 붕괴된 것이다. 나라가 몇몇 권력자와 자본을 위해 사유화된 것이니 헌법에 대한 가장 지독한 모독이다. 

그러니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의 고통은 개인의 해고의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자행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지워진 시간의 고통이며 민주공화국이라는 공간을 파괴당한 고통이다. 그러니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의 13년의 투쟁은 마치 댐의 붕괴를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팔뚝이 되어 우리 사회 역사를 버틴 고난의 길이었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시간과 삶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존중할까?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것이 왜 개별적 혈육만의 문제인가? 우리 사회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운명 속에서 사회적 역사적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역사적으로 준법자는 친일파였고 불법자는 독립투사였다. 준법을 자랑하며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자본가들의 모습이야 말로 법이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되어 버렸음만 다시 확인한다. 이제 그만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부여하자. 얼마 남지 않는 정년만은 평생직장인 공장에서 맞겠다는 저 어처구니없이 착한 주장마저 외면하면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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