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어라! 고마워라! 눈물이어라!


이소선 어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편하게 웃다가도 나중에 가슴 한 쪽이 시큰한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태일의 뜻을 잇다보니 태일이만 자식이냐는 어떤 소외감에 아픈 다른 자식들에게 소홀했다는 탄식도 있다. 전체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실제 자식들의 현실이 붕괴되는 것, 그 붕괴된 고통을 대한 자식들의 비명 신음, 사람들의 눈초리와 시비, 아주 작은 혜택으로 쉼 없이 태일이의 길을 포기하라는 돈과 권력의 유혹... 그 속에서 자식이 산 세상 시간보다 두 배를 넘게 자식의 뜻으로 산 이소선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까맣게 타 문드러지는 세월이었을까? 그리고 2019년 우리는 또 이제 또 한 분의 이소선 어머니를 만났다. 태안 서부화력 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다 목이 분리되고 몸이 바스러져 죽은 김용균 열사의 모친,김미숙 어머니다.      


두 어머니의 특징은 정말 자식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강고하게 쳐둔 그물을 찢고 나섰다는 것이다. 열사는 시대의 어둠을 두드리는 자명종 소리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다. 누군가의 아침을 깨워 세상의 아침을 열자고 제 몸을 역사로 직진시킨 분이고, 죽음으로 불의 부당한 세상을 바꾼 분이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열사의 죽음이 되기 어렵다. 태안 서부화력에서 몇 년간 12명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11명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알 수 없었다. 돈과 권력이 쳐 둔 그물을 찢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용균 열사는 다행히 노조가 있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만났고, 무엇보다 자식의 죽음을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견딘 유가족들, 특히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 상담을 하는 나는 상담을 온 분들에 대해 기본적인 느낌은 ‘고마움’이다. 우리 상담소까지 왔다는 것은 해볼 것 다 해보고도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덮친 절망을 한 번 더 이기고 오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해고는 참 쉽다. 쉽고 흔한 해고를 법대로 하자고 하면 어려운 해고, 노동귀족, 진상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다.)가 된다. 실제 해고 통보를 받은 이 중에 부당함에 구제신청을 하는 사람은 30% 미만이다. 구제신청을 하고도 외면을 받아 법원까지 가는 것은 그 30%의 30%도 안 된다. 10%도 안 되는 정말 억울하고 분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법적 시비를 다툰다. 이것도 많다고 돈과 권력은 ‘경직된 노동시장, 귀족노조’라며 노동유연화라는 마귀의 주문을 외운다. 3% 소금물이 바다의 부패를 막 듯, 10%의 불의에 불평을 한 불편한 사람들이 자본의 탐욕 아래서 최소한의 사람됨을 지키는 힘이다. 이 힘을 만드는 사람들, 그러니깐 생의 한 용기를 낸 사람이 상담을 하러 오신 분이니 어찌 귀하고 고맙지 않겠는가? 한국인은 지배하는 생각은 참 많지만 그 중에 힘이 센 놈이 ‘비겁하게 살라’는 기괴한 사랑이다. 모난 돌이 정 맞으니 용기를 내면 너만 다치고 그도 모자라 온 가족이 피해를 받는다는 공포가 만든 것이, 사랑인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와 함께 따라 붙는 것이 ‘목구멍이 포도청, 산 사람이라도 살자’는 지독한 현실주의다. 비겁한 사랑과 현실주의가 붙어 버리면 도대체 그 앞에서 남아나는 고귀한 것이 없다. 대의 의리 원칙 그 모든 인간적 존엄들은 그저 생존의 사치일 뿐이다. 그래서 삼성자본은 노조를 따돌리고 유가족을 꼬여 돈으로 열사의 죽음을 화장하고 시치미를 뗀다. 유가족들은 가장 슬퍼 예민한 사람들이다. 노조나 주변 동료가 죽은 이의 동지가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용기를 만든 나쁜 이들로 원망이 앞서고, 죽음의 사회적 확장에 엄두를 못 내다가 경찰과 자본의 ‘산 사람이라도 살아라.’는 속삭임에 아주 쉽게 용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실은 열사의 죽음을 둘러 싼 투쟁은 끔찍하게 힘들다. 이 힘듦을 견딘 김용균과 그 동료 동지들, 공공운수 노조나 연대 노동사회 단체들 정말 하나하나 우리사회 속에서 고맙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소선어머니와 김미숙 어머니의 공통점은 자식에 대한 사람을 자식의 염원 속에서 발견했다는 점이다. 태일이가 ‘내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할 때,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이 깜깜한 세상에서 불빛 하나를 만들 바늘구멍 하나 뚫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말과 약속을 생을 통해 실현한 이소선 어머니의 사랑은 태일에 대한 절박한 존중이다. 김미숙 어머니는 비정규직의 비참을 중단시키기 위해 재벌만 만나는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달라는 유언이 된 한 장의 사진에서 용균이의 염원을 봤다. 그 마음으로 여전히 죽음의 조건을 그대로 유지 한 채 돌아가고 있는 죽음의 현장을 보자마자 용균이의 친구들을 죽음에서 구출하는 것이 바로 용균이의 뜻이자 용균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임을 아셨을 것이다. 자식을 가족의 울타리에 가두지 않은 용기, 그래서 돈 몇 푼에 자식의 뜻과 자식의 생이 만들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곳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세운 분이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어머니는 광화문 장례식에서 “꽃다운 아까운 청춘 가엾어라 내 아들아!” 불렀다. 저 가엾음이 저 애끓는 연민이 바로 우리 사회 어둡고 춥고 약하고 아픈 이들을 향한 가없는 사랑의 뿌리다. 고마워라! 나이 어린 우리들의 어머니, 그 사랑의 슬픈 용기여! 그 날 그 자리에 하늘은 한 없이 푸르렀지만 눈물은 그 푸름마저 다 지워버렸다. 아직 우리가 갈 길은 여전히 눈물길이라고...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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