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역사적 정통성 또는 정체성

 

지난 12일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한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주제의 학술회의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보수, 개혁 모두 집권 세력이 과도하게 역사인식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선한 정치권력이라도 역사 오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현 정부의 국가·민족주의적 역사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임시정부 신성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이것은 자칫 극우 반공주의자들의 1948년 건국설과 함께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역사전쟁”이 된다는 비판이다. 시쳇말로 ‘내로남불’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꼽는 존경하는 위인 1위가 백범 김구다. 상해 임시정부를 지킨 상징에 미국과 이승만의 남한의 단독 분단정권 수립 책동에 반대하여 남북 좌우를 합쳐 통일을 외친 그의 삶이 만든 힘이라 생각한다. 3.1운동 이후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나라 건설의 상과 평화 통일에 대한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온전히 보여주는 인물, 그러니깐 반공 반사회주의 분단광기를 넘는 거의 유일한 분단극복의 상징 위인이 백범이란 말이다. 
백범은 분단에는 ‘자주와 민주’도 없고, 대중은 기아에 빠지고, 가정은 이산하고, 동족은 상잔하며 심지어 세계의 평화도 없다고 갈파했다. 한반도에서 통일 독립 정부를 세우는 것은 세계평화의 초석이며, 세계평화를 우리 손으로 창조하는 영광이자, 인류의 행복이라 했다. 
실제로 친일친미의 힘으로 단선단정으로 분단을 획책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역사적 전통성 차원에서 따지는 것은 항일무장투쟁과 김구를 포함해 좌우를 망라하고 분단반대와 통일을 외치며 수립된 북한과의 비교에서 역사적 양심을 저버리는 노릇이다. 우리 헌법에 국가 정통성의 근거를 3.1운동과 4.19로 두고 있지만 3.1의 반제자주정신과 4.19의 반독재 민주주의 정신이 2019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나는 저절로 얼굴이 창백해진다. 
남한의 현대사는 정통성이 아니라 정체성을 챙겨야 한다. 3.1의 반제자주정신은 미국 등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4.19 반독재민주정신은 독재와 민주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고 기리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역사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세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48년 건국으로 보는 것을 반제 자주 독립의 역사도 거부하고, 반독재 민주화 정신도 목 졸라 죽이는 가장 치명적인 반역사적 행위로 본다. 무슨 역사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란 말이다. 분단과 독재와 부정부패, 그것에서 권세를 누리는 반칙과 특권세력의 차별에 맞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채우지 못한 진정한 민주주의 자주와 통일을 만들어 가는 우리 민주 시민들,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의 역사, 4.19, 6.3,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 97~8년 날치기 총파업, 효순이 미선이 촛불항쟁, 광우병 촛불 그리고 탄핵촛불까지 불의의 적폐를 도려내고 불의정권을 교체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한발 한발 전진시킨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구현해 왔다고 믿는다. 48년 분단 정부수립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킨 면에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들려오는 14년간 부당한 정리해고, 그 사법 농단에 맞선 콜텍 노동자 투쟁 승리 소식이 보여주는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아래로 부터 약자들의 투쟁과 연대’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긍의 근거, 역사적 정체성의 고갱이라 믿는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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