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상에서 막말로 그간에 쌓았던 정(情) 등 인간관계에 균열이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해(利害) 문제나 의견차이로 인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화해가 되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소원한 관계가 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원한관계가 되는 경우조차 있다. 
막말의 부정성은 그 결과를 볼 때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혹자는 카타르시스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잠시잠깐의 자기만족일 뿐 대개는 편치 않은 결과가 된다. 즉 미안함에 더하여 부끄러움조차 가지는 자괴감을 갖게도 한다. 그런가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결과조차 있어 막심한 후회의 사유조차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듯 막말은 사람들과 관계에서 대개는 나쁜 현상을 만드는 소재가 된다. 
막말을 하게 되는 동기는 무얼까? 그에는 분명 사연이 있을 게다. 대개는 자존에 관한 것 예를 들면 모욕을 당해 그것을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은데 따른 반사적 언어행동이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말하는 자의 소양 문제 로 인한 경우도 있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삶에 막말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황에 따라 누구도 할 수 있으니 이를 무조건적으로 나쁘다할 수만은 없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함에도 막말은 선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은 역시 보통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이고 그것은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물론 분노와 증오조차 일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막말이 가지는 해악이다. 
막말을 할 정도의 상황을 맞으면 그것을 행동하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당사자를 불쾌하게 하고 자신에게도 불편한 현상을 초래한다. 그렇듯 막말은 그것이 연루된 인간관계에 부정성을 끼치는 만큼 이를 삼가고 자제하는 것을 보편 가치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막말을 앞에서 살핀 것과 다른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하면 막말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볼 때 같은 범주로 보기 어려운 것이 그것으로  막말이 가지는 부정성의 극치다. 즉 경쟁상대 등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것을 왜곡하여 저질적 표현을 하거나, 사실이기는 하지만 비약하여 표현을 하고는 비열한 비교로 상대를 자극하는 경우다. 이는 대개 정치인이나 대중이 알만한 지명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정치인들의 막말을 자주 접하는데 이들의 모습 중에는  이와 같은 행태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보이는 당사자들을 모두 잘못되었다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 나름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으로 소신으로 이해되어야 할 게 있고, 비록 특정 상대를 비난하는 표현이이기는 하지만 경청할만한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도 정치인 등 이른바 사회 지명인들의 이런 유형의 막말은 듣기도 거북하고 수용이 어려운가 하면 저항조차 일게 한다. 그들의 현재 위치에 대한 신뢰에 대한 기대치 때문일 게다. 그들의 언사는 진실이나 정의를 말하기 보다는 자기의 이익만을 위한 가공된 목표가 있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행동한다. 사회 지도자가 되고자 하면서 보편가치에 반하고 품격 문제조차 있는 언행을 일삼는 자들이 득세를 하는 사회는 정의 사회라 말 할 수 없다.
유의하고자 하는 것은 내년이 총선이 있는 해고 그래서 국회의원 후보가 되고자 튀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자들 그러니까 건전한 사회 지도자로 기대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체 대중영합적인 행동으로 자기를 알리려는 자들이 보인다. 이런 자들은 국민의 대표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유감인 것은 상당수 국민들은 이러 자들이 국회의원 또는 후보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선거 때는 백지로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질이나 능력보다는 현재 결과 즉 정당공천 결과를 판단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의리로 봐야 할지 무지하다할지 모르겠다.
세태가 이렇고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인들의 막말 퍼레이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소양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자들이 생겨나고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은 주권을 주장하면서 그것의 본질을 망각하는 국민들의 책임이다. 요약을 하면 불량정치인이 생성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 장본인은 국민이다.  이러한 지적에 자유로운 국민의 수는 많지 않다. 
막말은 비판의 목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그것이 가진 자극성은 사회의 경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듯 의미를 가지는 표현은 사회 정의 구현이 목적일 수 있는 등 긍정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기능이 있다 할지라도 막말 성 표현 방법은 삼가야 한다. 공손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으로도 의도하는 효과를 충분히 구할 수가 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정치 지망생 등 사회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유념해야 하는 것은 막말로 치부되는 표현은 어떤 목적에서든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이 더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듣기 좋은 말로도 얼마든지 상대방을 자극하고 다수자에게 공감을 갖게 할 수 있다. 2020년 총선에 나서려는 이들은 경청하기 바란다.(♣2019.06.08.)

 

시흥3동에 거주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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