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몰려와 책을 보고 잠시 두런거리다가는 다시 훅 나가버린 어느 오후, 갑자기 찾아온 적막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한참 서성거렸지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닌지라 얼른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가보았다. 그림책 하나가 바로 꽂히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다. 
 그림책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의 표지에는 한 할아버지가 작은 집 앞에서 역시 작은 마당을 쓸고 있고 푸른색을 전신으로 입고 있는 투명한 느낌의 사람이 마주 서 있다. 
 50년을 넘게 혼자 살아온 할아버지는 언제부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데 다름 아닌 귀신이었다. 일본인이었던 이 귀신은 자신의 비석을 찾으면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문기사에 흥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귀신을 알아보게 되자 당장 자신의 비석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신의 비석이 있는 곳에 할아버지가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 가스통 받침으로 쓰던 비석은 귀신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죽은 날짜가 다르다고 했다. 침통해하는 귀신이 불쌍해진 할아버지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귀신은 자신이 숨겨둔 은을 찾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비석을 함께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할아버지는 아주 힘들어하면서도 일단 동네를 뒤진다. 
 도저히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다고 하자 귀신은 풀이 죽는다. 할아버지가 왜 이 땅에서 죽었는지 묻자 귀신은 자신이 100년 전에 고향 대마도를 떠나 돈을 벌러 부산에 정착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병이 들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열다섯 살에 전쟁으로 피난을 가야했는데 장남인 자신을 먼저 보내고 따라오겠다는 부모님은 영영 만나지 못했고 고향인 연백은 북한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귀신과 할아버지는 이제부터 열심히 귀신의 비석을 함께 찾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그림에서는 같은 그림에서 도드라지지 않았던 할아버지네 댓돌이 보인다. 그 댓돌에는 한자로 뭔가 잔뜩 써져있다. 아마도 그것이 귀신이 찾던 비석이 아닐까 싶었다.
 책의 뒤쪽에 작가가 쓴 이야기를 읽고서야 이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부산 아미동은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들의 무덤이라고 했지만 작가는 조선시대 무역을 담당했던 초량왜관에서 일하던 일본인들의 무덤도 이 곳에 섞여있다고 했다. 책에 나온 귀신도 그런 사람이었다. 
 일본인들은 무덤 앞에 비석을 많이 쓰는데 3층으로 짓는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 나고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천막조차 칠 곳이 없던 이들이 일본인 공동묘지터에 있던 비석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기도 하고 비석을 이용해 담벼락도 만들고 했다. 죽음에 대해서는 엄숙함을 갖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쟁의 날벼락 속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는지 비석들은 뒹굴거나 벽으로 이용되고 가스통 받침으로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사진을 보고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일본사람들의 공동묘지라면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있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잘 지내기보다는 뭔가 군림하던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그럼에도 이들의 비석이 거리를 뒹굴고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고 심지어 유골항아리들이 훼손되는 경우도 많았다니 그것이 바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시는 이곳을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뜻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마을에는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작은 인형들도 만들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도깨비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일본의 요괴 오니의 형상이었다. 일부러 일본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행인 것은 주민들 중 일부는 일본인들의 영혼을 위해 향을 피우며 죽은 넋을 위로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니 아이들은 슬픔과 위로를 이야기한다. 슬픔은 다른 색으로 두 사람에게 있고 위로는 두 사람이 다 필요하다고 했다. 고학년이라 생각이 의젓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그림은 말없는 위로를 느끼게 한다. 
 비록 우리를 아프게 하고 억압하던 이들이라도 죽음의 세계로 떠난 이들은 적절한 존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터에 자리를 잡아야 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더 존중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실현되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양쪽 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민경아 

이영아 글·그림/ 꿈교출판사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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