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혜 글, 이은영 그림 바람의아이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올해 초 큰딸이 할아버지 전화를 차단시켜버리는 일이 생겼다. 토익 시험을 준비하는 손녀를 위해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토익 문제집을 사오고, 시험 일정을 안내하고, 공부를 어디서 하느냐 잘 되느냐 맛있는 거 사줄까 등등 전화를 하셨다. 아이는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나친 관심에 짜증을 내다가 결국은 전화를 차단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을 즈음 「새를 사랑한 새장」(이경혜 글 이은영 그림, 바람의 아이들)을 읽게 되었다. 
  겨울을 맞은 넓은 초원, 자작나무에는 텅 빈 새장이 매달려 있다. 새장은 춥고 외로워하던 터인데 길 잃은 홍방울새가 날아들어 잠이 들었다. 새장은 나무의 정령에게 마법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새가 새장을 떠나면 마법의 힘은 사라기 때문에 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자물쇠로 잠가 두었다.새장은 홍방울새에게 폭신한 깃털 이불, 장미꽃잎이 둥둥 떠 있는 목욕물, 맛있는 벌레 요리까지 준비해주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한다. 맛있게 먹고 난 뒤 홍방울새가 숲에 가서 한 바퀴 돌고 올 테니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해도 새장은 홍방울새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새장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새장 안에 모든 걸 갖추어 주었으니 편안하게 새장에서 지내라는 것이다. 한동안 홍방울새는 새장이 온갖 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기꺼이 즐기면서 행복에 겨워 노래까지 부르며 지낸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는데 홍방울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온몸이 펄펄 끓고 맛있는 벌레 요리도 먹지 않는다. 새장은 온갖 정성으로 돌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어느 날 까마귀가 와서 자물쇠를 부숴주면서 얼른 새장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그 안에 있다가는 병들어 죽는다고. 홍방울새가 막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새장은 슬픈 목소리로 무엇이든 다 해줄 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 소리에 홍방울새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새장에 남는다. 
새장은 밤새도록 홍방울새를 돌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새장은 나무의 정령에게 홍방울새를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무의 정령은 “하늘을 나는 새가 날지 못해서 생긴 병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단다.” 라고 한다. 밤새도록 찢어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새장은 다음날 홍방울새를 내보낸다. 날아갈 힘도 없던 홍방울새는 날개가 저절로 활짝 펴져 멀리멀리 날아갔다. 
  홍방울새가 날아간 새장은 덜커덕덜커덕 흔들리며 춥고 외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해진 홍방울새는 다시 새장에 들어와 잠을 잔다. 다시 마법에 걸린 새장은 자장가를 불러주고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해 준다. 달라진 것은 새장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새장과 홍방울새 이야기는 지극 정성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닮았다. 어렵고 힘든 일은 내가 다 해 줄 테니 너는 편안하게 내 울타리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라. 아이의 생각보다는 내가 더 많이 살아봤고 경험이 많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내 말을 다 믿고 넌 나만 따라와 하는 듯하다. 새장 안에만 있던 홍방울새처럼 자신이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새장이 해주는 대로 있다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게 될지도 모른다. 

  새는 하늘을 날아야 행복한 동물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니 새장 안에서 병이 들게 된 것이고, 아기였던 손녀는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 앞 가름을 해 나갈 수 있는데도 할아버지식대로 사랑을 주게 된 것이 손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 이유였다. 

  새나 식물이나 사람이나 그것을 돌보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삶을 스스로 펼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뿐이다. 적·당·한·거·리를 두고서 말이다. 
 「적·당·한·거·리」(전소영, 달그림) 이 책은 식물들 돌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딱 내 책이네~.”하면서 왔다. 식물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물을 주어야 할 때, 겨울이면 밖에 두어도 될 식물, 안으로 들여놔야 할 식물, 햇빛을 좋아할 식물, 그늘에 두어도 될 식물 등등 그 식물의 특성에 맞게 도와주어야 한다. 
  물을 가끔 주어야 할 식물에게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뿌리가 썩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또 물을 자주 주어야 할 식물이 목말라 하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그 특성에 맞게 도와주는 일 참으로 어렵지만 잘만 하면 아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된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

 

*시흥5동 금천마을공동체지원세터 1층에 마련된 기록관에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展(전)이 6월21일부터 7월19일까지 진행됩니다. 17살이 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지난 이야기들과 기억속의 사람들, 기록물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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