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는 개천에서 용 난 가장 확실한 증표였다. 돈과 권력이 특권과 반칙으로 똬리를 틀다 못해 문드러진 세상에서 공부하는 머리와 엉덩이 짓무르는 노력으로 돈과 권력의 세상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유력한 길이였다. 또한 법을 통해 진리와 진실을 파고들고 응징하는 가장 빛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판검사들은 이중적이다. 출세에 대한 욕망과 세상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 타락과 사회의 마지막 진실에 대한 용기가 함께 섞였다. 하지만 이런 이중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출세에 대한 욕망과 타락으로만 남게 된 것은 놀랍게도 ‘민주화’ 탓이다. 
80년대 까지 판검사는 말 그대로 ‘어용’이었다. 80년대 필자에게 전달된 공소장과 판결문은 오탈자까지 동일했다. 판검사들이 독재정권의 흉기일 뿐이었다. 독재정권의 유지가 가능한 것은 돈과 권력이 언론과 검경을 장악하고 사법부(司法府)를 사법(邪法, 死法)부로 만들어 민심을 뒤틀 수단으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판검사들은 잔인하고 뻔뻔하고 양심 없는 흉포함은 있어도 ‘사회적·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화와 함께 법질서를 지키면서 주장이 개진되고 세상이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합법적 제도적 틀 내에서의 행위만 요구했다. 법 밖에서 법을 넘어서는 ‘진보’의 길은 다시 한 번 불온과 무질서가 되었다. 문제는 그 법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고 판단하는 (국회·검경·재판부) 그 어느 곳도 ‘새로움’이 없었다. 결과, 민주화가 독재의 흉기 검경 판사들에게 도덕적 권위마저 부여한 횡액이 되었다. 『법원사』의 공식기록에 따르면 1945년 10월 11일 미 군정청은 전국의 일본인 판검사 전원을 일시에 퇴진시키면서 조선인 판사 39명과 검사 23명을 임명했다. 그런데 퇴진시킨 일본인 판검사와 새로 임명한 조선인 판검사가 중복이었다. 예를 들면 민복기는 ‘이와모토’로 퇴임하고, 조선인 ‘민복기’로, 이영섭은 ‘다케히라’로 퇴임하고, 조선인 ‘이영섭’으로 신임판사가 된다. 친일파들이 부활하는 마법의 순간이며 판검사들이 영원히 권력의 빛 속에서 칼자루만 쥐는 자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청산은커녕 반성도 없는 일제 지배 도구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분단 독재 부패정권의 가장 강력한 국가폭력의 집행자들이 된다. 이 폭력에 민주주의라는 권위마저 입혀버렸으니 그들의 타락은 개인적 탐욕을 넘어 구조적 집단적 타락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승태와 그 일당들의 타락, 특히 대법원의 양아치화는 대한민국 헌정에 대한 최종적 유린이다. 이들의 타락은 박근혜의 무지·무능에 의한 농단보다 그 역사적 죄가 크다. 그리고 버닝 선 사건에서 경찰,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의 모습은 그들의 개 같은 타락과 부패가 얼마나 구조화·성역화 되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권세만 부리는, 선출되지도, 심판받지도 않는 무도한 권력의 무한한 타락. 여기에 무슨 민주공화국의 법이 존재할까? 게다가 그것을 구조적으로 보호하고 무마하는 작금의 판검사들의 더러운 카르텔, 모든 판검사들이 개가 된 것을 자처한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적폐의 슈퍼 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판검사들의 고위급 인사들은 80년대 전두환 밑에서 민주주의에 고문을 가한 당사자들이다. 민주화로 치장된 지난 30년은 고문·조작을 해대던 권력 괴물들의 권력 상층부화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개혁을 맡기는 것은 자기가 자기들에게 면죄부를 주라는 특권을 용인한 것이다. 부정부패 특권 반칙 타락의 세상에 중심은 결국 ‘정치권력’이다. 그 정치권력 중 원래 그런 놈들인 ‘자유한국당’ 부류보다 민주주의를 오염된 법 제도 체계에 가두고 그 특권에 취한 역대 민주당 정권의 안일과 오염과 무엇보다 ‘단호함’의 부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이들이야말로 독재정권의 흉기들에게 법 제도적 권위를 그대로 넘겨주어 오만한 권력의 괴물로 덧나게 만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청산·제거해야 할 것들과 협치를 말한 책임은 온전히 문재인 정권과 집권여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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