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세 번, 내 삶의 지평이 확~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가 나만의 자동차를 갖게 된 것이다. 초록색 티코.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이었다. 대로변에서 가지쳐나간 샛길들은 내게 늘 유혹이었고, 그곳들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은 없었다. 하나가 아니었기에. 나는 이제 저, 어디로 뚫려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혼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길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돌아 나오면 그뿐이었으므로.
두 번째가 PC 통신을 만난 것이다. 도스 시절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파란 화면 속에서 깜박이던 커서는 얼마나 매혹적이었던가! 구글처럼 모든 걸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현명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궁금한 것을 게시판에 올리면 하룻밤 사이에 댓글이 쫙~ 달려 있곤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겐 신세계였다. 
세 번째가 eBook과의 만남이다. 정확히 말하면 ‘월정액 전자책 구독 서비스’. 한 달에 일정액을 내면 맘껏 원하는 책을 다운로드 받아 읽을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언제 어디서나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책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다. 새로 전학 온 친구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나의 엄마와 달리 신여성이었고,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양과자, 토끼 모양으로 빚은 사과, 그 당시 귀했던 바나나나 귤 등을 맵시 있게 접시에 담아 내오곤 했다. 가구들도 고급스런 것이었겠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지 별 기억이 없다. 다만, 그녀의 방 한 편에 놓여있던 책장에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손때조차 묻어있지 않던 책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 책들을 빌릴 수 있었고, 책 때문에 그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듯하다. 
NGO 지부장 역할로 아프리카 땅을 다시 밟았다. 한동안 업무 파악하느라 주말을 즐길 여유 같은 건 생각도 못했다. 이제 좀 자리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골칫거리 하나가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지역소식지 발행이었는데, 현지인에게 글을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소식지는 어찌어찌 만들어졌는데, 내 마음이 까맣게 타고 난 후였다. 일에 탄력이 붙고 주말을 되찾자, 책을 읽고 글도 쓸 짬이 생겼다. 내가 기자가 되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직원 중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 둘이 의기투합했다. 영어 번역본은 다시 스와힐리어로 번역하고,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병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내 깜냥의 지평에서 빚어졌을, 나의 한글판 글이 사장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한국의 매체에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이 익숙한 공간을 다시 찾게 되었다. 혹시라도 소피아를 기억해주는 독자가 있다면, 그들과의 해후가 반갑고, 한글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쁘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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