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0

 

민족과 그것이 ‘주의(主義)’가 붙는 민족주의는 참 다르다. 그 이전에 민족에 대한 관점 자체가 이중적이다. 히틀러나 도조(2차 대전 일본 1급 전범. 한국인 징병과 징용, 그리고 위안부의 최종 책임자 : 편집자 주)의 민족주의와 유관순·김구의 민족주의는 가해와 피해라는 건널 수 없는 차이를 품고 있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모성이나 애정 같은 본성적 영역이라면 민족에 주의가 붙으면 결렬한 탐욕이나 적대가 휘두르는 차별과 혐오를 전제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흔히 ‘양날의 칼’이라 하는데 강도의 칼날이 될지 요리사의 칼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조건과 그 시대의 사람들의 품격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가 크다. 민족은 흔히 인종주의를 감추거나 키우는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다툼과 민족적 다툼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게 피를 묻힌 비극의 핑계였다. 하지만 그 속내는 지배자들의 민중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모략이 태반이다. 그래서 민족이란 말이 가해의 수단이 아니라 피해에 대한 저항의 수단인지, 민족이란 말이 약자의 입장에서 연대와 극복의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 진보적 관점이다.

우리는 정부의 필요에 의해 반일감정에 동원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승만이 내정의 참담을 가리고 존재의 명분을 채우기 위해 친미 반일의 행보를 했고, 처음부터 친미 친일한 박정희를 지나, 전두환이 광주의 피를 숨기고 자기의 권력에 명분을 채우기 위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이유로 반일 궐기에 국민을 동원한 바 있다. 그 이후로 북풍과 일풍은 아주 손쉬운 책략이 되어 종종 노동자 민중의 눈을 속여 왔다.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왜냐면 아베의 일본이 아주 전략적이며 정치적인 선제공격에 의해 문제가 불거지고 악화됐기 때문이다. 아베는 과거를 회복하기 위해 선공을 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공격해 전쟁 구조를 유지 하려한다. 남한의 민주주의를 공격해 남한의 독재 적폐를 온존케 하려한다. 한국의 경제를 공격해 예속적 반민중적 구조를 강화 하려 한다. 누가 봐도 못된 군국주의다. 이런 군국 아베의 일본은 우리에게 뜻밖의 교훈을 준다. 우리 안에서 반공반북이 친미친일과 어떻게 하나이고, 그 결과가 매국 반동화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경원 황교안 주옥순 김문수 전광훈 이영훈... 반공반북과 유신에 대한 맹목이 얼마나 아베의 군국주의와 닮았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꼭 기억할 입장이 있다. 구미에서 전범 기업 아사히 자본과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글이다. “아사히는 강제징용을 한 미쓰비시의 자회사다. 아사히는 12만평의 부지 50년간 공짜 임대, 5년간 국세 면제, 15년간 지방세 감면을 받고 있다. 아사히는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불법파견까지 자행하며 연평균매출 1조씩 떼돈을 챙겼다. 지금도 정부가 전범기업 수백 개에 특혜를 주고 있고 국민연금은 투자까지 하고 있다. 우리에게 더 심각한 것은 김앤장이다. 대한민국 최대로펌 김앤장은 청와대를 김앤장의 출장소로 만들었다. (양승태의 대법사법농단도 결국 김앤장과의 사악한 거래다.). 김앤장은 강제징용을 한 미쓰비시를 변호하고, 가습기 살균제로 아이들 목숨을 앗아간 옥시도 변호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해 떼돈을 벌어들인 론스타도 변호했다.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아베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앞서 정부는 전범기업에 지원과 투자부터 멈춰라. 김앤장 출신 쓰레기를 정부 요직에 임명하는 짓도 중단하고. 김앤장을 해체시켜라.” 이런 아사히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아사히 일본 본사 앞에서 일본인들은 자발적으로 연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가 민중의 일본과 아베의 일본이 다름을 알아야 하는 실체적 이유다. 친선과 연대야 말로 모든 폭압과 침탈에 대한 우리의 유일 무기이고, 거기에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없다. 

촛불은 우리 안에 우리의 존엄을 파괴하는 특권과 반칙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항쟁이었다. 집단지성의 열정적 발로라고 자찬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반일만큼 우리에게 반칙적인 존재인 미국에 대한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제에 대한 분노만큼 베트남에서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분단과 전쟁이 만든 증오에 기초한 반동 매국에 대한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서구 어느 철학자가 말했단다.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애국심이 필요한 것도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권의 실세라는 자가 친일과 사카린 밀수 등의 범죄로 부를 만들고 반칙과 특권으로 그 부를 세습하는 삼성에 쫒아가 “슈퍼 애국자“라 해서는 반일(反日)의 결과가 종일(從日)이 되는 기괴한 일이 생긴다. 특권과 반칙과 불의를 타파하는 조국과 민족 사랑을 하면 좋겠다. 노동자 민중이 행복하고 후손들이 행복한 애국을 위해 우리는 분노와 열정 속에 진보의 이성을 담는 노력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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