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상담센터에 온 차군이 금천인 신문을 유심히 읽는다. 그리고 묻는다.
"소장님 이게 맞는 것이예요?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예요? 나는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데요." 차군은 금천인 제 6호에 실린 '할머니를 위한 육아교실' 기사를 보고 질문을 한다.

 "육아를 할머니에게 맡기는 것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두배, 세배의 부담을 주는 것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지역사회나 행정이 품어 안고 나가야 되는데 그것보다는 부족한 복지로 생긴 부담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그대로 잘 적응하자는 것은 결국 현실의 모순을 고치자는 능동적인 생각에 반하는 것 아니에요?"

 "뭐 네 말이 틀리지 않지만 실제로 있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생각을 칼로 무 자르듯 생각할 수 있나. 교육자들이 그 교육을 통해 무엇인가 배우면 그것도 좋은 것 아닐까?"

"문제는 구청의 평생 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잖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줄일까 라는 점과 내 손주 손녀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더 많은 우리 손주 손녀를 위해 노인들이 사회적 보람과 기여로 진행되는 사회육아 프로그램 같은 것을 진행해 주는 것이 옳지 않나요?"

미묘하지만 중요한 문제제기다. 이런 문제제기가 살아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나는 좋다. 그냥 무심코 넘어가는 것 중에 똥을 덮는 비단주머니들이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말할 때 비정규직이라는 존재 자체가 노동자에겐 권리를 삭제하고 의무만 주고 자본에게 부릴 권리만 주고 의무를 면피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부당한 제도이고 현대판 노예제도이기에 제도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미 부정할 수 없는 구조로 굳어 있기에 폐기는 과한 주장이고 그저 불평등만 줄이자는 견해가 부딪친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합리 중도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강점을 인정하고 자치를 하자는 일부 지주 지식인들의 논리는 쉬지 않고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화두가 실용을 이야기 하고 공정을 이야기하다 공생발전까지 진화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말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본질에 대한 근본적 관점에서 부자 중심 기업 중심, 힘과 이윤 중심의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근본적 관점은 무엇일까? 브라질에서 가장 존경받는 까마라 대주교가 한 말로 결론 맺는다.
"내가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행할 때 나는 성자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부자와 가난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세상은 나를 빨갱이라 칭했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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