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4

 

2013년, 박근혜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신부가 한 발언 중 ‘NLL과 연평도’ 관련 부분만 꼬투리 잡아 당시 박근혜 대통령, 정홍원 총리, 황우여 대표에서 윤상현, 김태흠, 유승민 등등 새누리당 의원과 어버이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들까지 집단으로 막말과 협박을 쏟아댔다. 그들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박 신부의 조국이 어디냐?”고 물었다. ‘구속시키라’는 구호는 점잖고, 성당에 난입, 화형식을 해대며 ‘즉각 사형에 처하라.’는 요구를 했다. 그때 박근혜는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국론의 통일을 강조했다. 
국론 통일을 말하면서 견해가 다른 이들을 ‘비국민’이라 하는 것은 100% 일본 군국주의 산물이다. 이 말의 존재 자체가 아직도 한반도 남녘에 일제의 정신적 문화적 식민노예의식이 절대적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과 서초동 대규모 집회를 ‘국론분열’이 아니라 “대의정치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을 때 국민들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했다. 물론 여기서도 국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나 직접 민주의 보완제도인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으로 보며 민주주의 본말을 전도시킨 근본적 한계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국론은 없어야 한다. 있다면 정책에 대한 정부 정당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국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론이란 말로 모든 이의 일치와 복종을 요구하면서, 이견이 있거나 따르지 않는 사람을 ‘비국민’이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낱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제가 1930년대 후반 국가총동원법이 내리면서부터다. 조선 등 식민지를 포함한 일제 군국주의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애국심이라 선동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것을 격리, 차별 증오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장치다. 국가와 정부를 일치시키고 관료체제를 국민 봉사 체제가 아니라 감시 동원체제로 만들어 버리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존재를 비국민으로 만든다. 그 최근 버전이 ‘종북좌빨’이다. 국론이란 말 자체가 군국주의 파시즘이자 지독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다. 민심은 변하는 것이고 발전하는 것이며 계급계층의 이해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사상 양심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고 헌법 전문에 저항권 정신이 적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국론분열을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에 일본과 미국, 군부독재와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구조적 적폐의 축이 살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 시절에 ‘너의 조국이 어디냐’ 묻던 이들이 ‘조국 물러나라’ 하고 있고, 조국에 대한 비판이 외려 애국이라던 이들이 조국수호를 외치고 있다. 총칼을 쥔 파시즘이 광장을 지배하는 파시즘으로 야누스가 되어 출몰하고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두 광장은 출렁이는 태극기로 하나가 됐다. 저 도저한 국가주의라니...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통일 후 첫 독일 대통령이자 법률가 출신의 보수정치인 헤어초크는 TV 토크쇼에서 “독일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진행자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 제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국가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결혼과 같은 제도이고 사랑해야 할 것은 독일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아내와 같은 독일 국민들이란 말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이들아, 당신들이 서 있는 광장에 고통 받는 민중, 그 사람들은 있는가?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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