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고] 남부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사람들  -복수노조

우리나라 헌법은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적 기본권이란 본질적 원칙을 하위 법으로 침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외 의존과 독재정권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서 노동3권은 그림 속의 떡이었다. 그림속의 떡이 현실의 권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 시민항쟁을 통해 성장한 한국의 민주주의 덕이다.

복수노조 건설은 기업별 노조를 강제한 전두환 정권의 '복수노조 건설 금지' 악법에 대한 저항이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 정권은 국정 전반에 걸쳐 반민주적 반동을 진행했다. 노동영역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단결권을 부정하는 기업별 노조 체제를 도입하고 복수노조 금지를 통해 노동자의 자주적 민주적 단결을 봉쇄했고, 제3자 개입 금지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탄압했다.

기업별 노조는 사용자들이 노조를 어용으로 만들기 가장 좋은 체제다. 그런데 노조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면 어용노조에 대해 민주노조의 도전이 쉬워 질 것을 우려해 전두환은 복수노조금지 조항까지 만들었다. 헌법상의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권이 정면으로 부정당한 것이다.

노동3권은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만들 수 있다는 단결권, 교섭을 보장받는 단체 교섭권, 단결권과 교섭의 권리를 부정하는 사용자에게 행동으로 이를 항의할 수 있는 단체 행동권이다. 노동3권은 하나의 유기체적 권리다. 그래서 다른 하나가 부정되면 모두가 부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을 얼굴, 몸통, 하체로 나눠놓고 하나나 두 개만 선택하라 하면 그 자체가 온전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선택 불가능한 유기체적 하나가 노동3권이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주의 일반에 대해 이해도 경험도 적은 우리나라는 공무원 교사들에겐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고 쟁의권도 각종 제약으로 불구가 되어 있다. 이제 겨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이 풀렸다. 실상을 보면 단결권을 보장하는 대신에 교섭권과 행동권을 제약한 악법이지만 말이다.

지난 10월 4일에 시흥동 은행나무 위에 있는 범일운수 차고지 앞 인도에서는 쩌렁쩌렁 함성과 구호와 박수가 터졌다. 범일운수 운전기사들이 복수노조 설립을 보장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전국운수산업민주버스노조 범일운수지회' 출범식을 열었다. 회사 안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진행된 출범식을 통해 범일지회는 "회사는 중립을 지켜라. 회사 내 사조직을 없애라. 법이 보장하는 교육비 등을 지급하라"는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과 구호에 대해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노조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줏대를 가져야 하는 자주성, 모든 것을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에 충실하며 시작과 끝을 조합원의 직접 민주주의 원칙에 맞춰야 한다는 민주성, 그리고 나만 사는 눈치와 줄 대기가 아니라 함께 살자는 단결과 연대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노조다운 노조가 된다.

하지만 지금껏 서울의 버스회사의 노조들은 노조의 이런 기본 뜻에 충실한 적이 크게 없다. 노조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면 회사에 회유되고 안 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이 속에서 민주노조는 숨 쉴 수 없었다. 복수노조가 허용 되어 회사에 복수노조가 생기면 노조 간의 선의의 경쟁으로 노조다운 노조가 만들어 질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왜냐면 결국은 노조란 조합원의 입장에서 회사의 이윤이 챙기려다 발생하는 여러 가지 노동조건의 하락과 연봉제 등 비정규직화에 맞서야 하고 노조 간의 선의의 경쟁은 두 노조 공히 노동조합 본성에 걸맞은 대의와 명분을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대의 명분은 가깝게는 조합원들이 고용불안 없이, 임금 저하 없이 편하게 근무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고, 저만의 이득을 위해 전체의 이익을 외면하고, 당연히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노조의 운영이 밀실과 야합에 물들게 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합원 중심의 민주노조를 가로 막은 돈과 연고가 판치는 전근대적이고 지나치게 현실 이해관계에 매몰된 문화를 바꿔가는 것인데 복수노조는 서로간의 발전의 자극이 된다.

범일운수의 복수노조 설립이 버스 및 운수 영역의 그 동안의 잘못되고 부패된 관행을 깨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불행한 대립이 아니라 두 노총 모두에게 조합원의 민주적 각성과 단결로 가는 혁신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소수지만 용기를 낸 민주버스 범일지회 최광용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군대정권 치하에 저항을 한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과 다름없다. 또한 이들의 용기가 더 많은 노동자들의 용기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