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아프리카로 나갈 때만해도 꽤 순수했었던 하다. 그곳을 위해 이 년 열심히 일하고, 나의 잠재력도 시험해 보자며 힘이 들어가 있던 때였고, 지인들은 나의 뒤늦은 바람기에 힘을 보태주며 기부를 약속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였던지 나는 내가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을 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신나게 일했다.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그래서 나는 내가 잘 ‘들이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닌데, 기부금을 받는 것에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거절에도 상처받지 않았다. 
엔지오에서 일한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어느 분야이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곳에 발령을 받으면서 나는 후원금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후원금을 모집하겠어? 그런 것은 본부에서 해주는 거지. 조직을 관리하고 예산에 맞춰 잘 집행하는 것만이 나의 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본부에서 보내온 후원자 명단을 보면서 알았다. 내게 많은 부분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경력이 필요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열심히 ‘앵벌이’를 시작했다. 평생 내 ‘갑’으로의 지위를 보장하겠다는 너스레로 지인들께 손을 벌렸다. 아직 잠재우지 못한 나의 바람기를 조금은 안쓰러워하며, “그래, 나도 ‘갑’ 한번 돼보자.”라는 말로 지인들은 기꺼이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내 입에서 ‘앵벌이’란 말이 나온 후 그 일은 정말 앵벌이가 되었고, ‘갑’이란 말이 나온 후 정말 나는 ‘을’이 되어 있었다.  아무도 내게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지만, 나는 채무자가 된듯했다.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 아닌, 조직에 대한 의무가 나에게 그 일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길에서, 혹은 일하는 도중 죽고 싶다. 아프리카는 그러기에 좋은 땅이다. 이곳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었다. 나는 살아남았고, 아프리카 생활만 만5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조직을 관리하고 조직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고 있지만, 계약이 끝나면 프로젝트 매니저로 오지에서 한 번은 활동해 보고 싶다. 그 후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는 작은 학교를 운영하며 정원사가 되어 학교를 예쁘게 꾸미며 늙어가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었다. 멋지다며 후원을 약속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꿈을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남의 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감과 도덕성, 그리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매력적인 사기꾼이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의 그릇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마더 테레사. 그녀에 대한 일화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음식을 구하러 나갔다가 모욕 받는 것을 보며, 동료 수녀가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리는 지금 자존심을 구하러 온 게 아니고, 아이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얻으러 온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글을 쓰기위한 확인 작업이 필요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구글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그녀를 욕보이고 있었다. ‘당신은 테레사 수녀에게 속았다.’, 성인의 반열 오른 마더 테레사…’거짓 성녀’다?, ‘성녀’ 마더 테레사는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타고 들어가자 악의에 가득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아이티 독재자의 아내인 미셸 뒤발리에와 그녀가 다정하게 양손을 맞잡고 미소 짓는 사진을 보여주며, 후원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재자의 이미지 세탁은 물론 대중선동에도 앞장섰다는 내용이 보인다. 기부금에 좋은 기부와 나쁜 기부가 있을까? 쓰는 사람이 잘 사용하면 깨끗한 돈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들을 미화하는데 일조하면 안 되지. 일단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기로 하자.
마더 테레사의 시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에는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위한 구호물자나 비상약은커녕 모르핀조차 없었다. 그녀가 받은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돈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녀를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 혹은 근본주의 종교 사업가가 아니었을까, 라며 의심하고 있다. 내가 엔지오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엔지오의 실상을 알고 난 지금은 그 의심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의 단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사랑의 선교회’는 123개 국가에서 610개의 선교단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단체를 운영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여정에서 만난 그녀.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녀’의 반열에 올랐다. 얼마나 많은 검증을 거쳤겠는가? 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나는 내 마지막 꿈을 버리기로 한다. 남의 돈으로 내 꿈을 사는 일, 하고 싶지 않다. 혹시 누군가 내가 꾸었던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이유로 자신이 할 수 없어 그 꿈을 실현시켜줄 대리인을 찾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대리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탐방 기고 >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구통통 어린이기자단 X 마을신문 금천in  (0) 2019.12.18
김학의가 무죄라고?  (0) 2019.12.11
삼청교육대보다 더 낡은 것  (0) 2019.12.02
폼생 폼사?  (0) 2019.12.02
국론(國論)분열? 국론이란 없다!  (0) 2019.10.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