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센터가 만난 세상- no.207

 

김학의가 무죄가 선고됐다. 어쩌란 말인가? 어쩌잔 말인가? 페이스 북에 공유된 글을 본다. [양진호 무죄, 김학의 무죄, 윤중천 무죄, 미성년자 불법 포르노 운영자 1년 6개월, 소라넷 운영자 징역 4년 추징금 14억 천만원 취소, 양진호 위디스크 사이버 포주 벗방 채널 개설, 최종범 강남 미용실 개업 성업 중. 소라넷 미동의 동영상으로 피해자 여성들 자살, 피해자 설리 타의에 의한 자살, 피해자 구하라 타의에 의한 자살. 이래도 모르겠나? 이렇게 설명해 줘도? 이래도 이 세상이 공정하고 여성 혐오가 없다고...] 남성으로 남성의 구조적 특권, 내재된 습성, 복구되고 마는 가부장적 관성을 반성하고 비판하고 또 성찰한지 30년, 그래도 나는 저 무참한 관성과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죽음 앞에 더 할 말이, 아무 할 말이 없다. 무참하다.    

돌아보면 유죄가 무죄가 되고 무죄가 유죄가 되는 것이 역사다. 지금의 무죄는 역사 속에서 무지와 공포와 혐오와 증오가 되고, 지금의 유죄는 인류 앞에서 저항과 해방과 평등의 이름으로 무죄가 된다. 하지만 그 역사라는 말 속의 시간과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말 못할 고통과 인내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지... 현실에서 법으로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것은 돈이다.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것은 권력이다. 그들의 유착이 그 시대의 지배적 구조를 검게 물들인 결과다. 탈옥한 지강헌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그 본질을 꿰뚫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유무죄를 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가난과 차별이다. 소외와 폭력이다. 그것을 요약하면 민중에게 들씌운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역사지만 눈앞에서 무죄를 유죄로 만들고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마법의 힘은 결국 돈과 권력이다. 

우리는 그 적나라한 장면을 또 목격한다. 심지어 유죄지만 무죄란다. 공소시효가 지났단다. 김학의 사건이다. 김학의가 법무부 차관이 되었다가 범죄 마각이 들어 난 것이 2014년, 그 동안 세 번의 수사가 있었는데 두 번 무혐의, 마지막 한번 유죄라는데 공소 시효가 지나 무죄란다. 하지만 이 ‘비극적 희극’을 만든 것은 공소시효라는 시간이 아니다. 만약 공소시효가 문제라면 그 전에 두 번의 수사에 대해 우리는 눈 감고 만다. 1980년대 중후반 성동구치소에서 가장 인기 높은 이는 중풍을 맞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였다. 절둑이며 법정에 온 그는 발음도 되지 않아 손짓으로 자기 모습을 가르치면 모든 변론이 끝났다. ‘나는 이렇게 되어 먹고 살 수 없으니 봐 달라.’는 몸짓으로 유죄는 무죄가 되고 실형은 집행유예가 되었다. 이런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강도행위가 아주 노골적이었고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부정부패가 제공하는 더러운 편리하도 받고 싶어 난리를 쳐야 했다. 

김학의가 무죄가 된 것은 김학의가 무죄라서가 아니다. 김학의를 무죄로 만든 구조, 그 구조에서 흉기를 휘두른 똘마니들의 합작품이다. 검사와 판사, 그전에 경찰들, 돈과 권력에 의해 세뇌되고 사주된 이들의 한판 사기극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의 시간에 범죄를 감추고, 그 시간을 범죄로 오염시키면서, 크고 작은 특권과 이권을 지켜온 한국 자본주의의 더러운 지배 구조의 필연적 산물이다. 그 타락의 사냥개이자 흉기 경찰 검찰 판사들이다. 그들은 법을 앞세워 법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항상 법 뒤에 숨어 망나니 칼을 휘둘렀다. 유죄를 무죄로 만든 범죄자들, 두 번의 수사로 유죄를 무죄로 만든 놈들이 여전히 법을 휘두르는 조건에서 대한민국의 시간은 범죄의 방패가 되고 말 뿐이다. 살인강도에게 살인강도의 이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살인강도의 손에서 칼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학의의 진실보다 먼저 할 것은 그를 무죄로 만든 검찰이라는 복마전(伏魔殿)에 검사라는 흉기(凶器)를 제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간을 범죄로 오염시키고 양심과 염치를 파괴한 흉기검사들을 응징하는 것으로 재발방지를 시작하자.

문재훈 소장
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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